그리고 잡다한 생각들/일상, 여행, 오피니언 18

2022JIFF 전주 국제영화제 다녀온 풍경

화창한 어린이날을 맞아 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늘 이맘 때쯤엔 '맞다. 지금 전주영화제 하는 때인데 한 번 가볼까?'하는 생각을 하는데, 오랜만에 실천에 옮겨본 것인다. 거의 10년 만의 재방문이다. 어린이날에 왜 어른인 내가 신나게 노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말이다 - 본디 어린이는 '얼-인(人)이'에서 왔으니, 얼이 있는 자 누구든 즐길 자격이 있는거 아니냐고 반문 하고 싶다. 물론 쓸데없는 자문자답이다. 감사하게도 마음이 통하는 얼인이 3명과 함께 이 여정에 다녀왔다. 여운이 많이 남았고 꽤나 마음에 드는 장소들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의 풍경을 남겨본다. 1. JIFF 기간, 객사길 인근 풍경 전주 영화제는 객사길에 위치한 CGV와 씨네Q에서 대부분의 영화가 상영된다. 좁은 구역에 영화제가 집중되어있기..

MPB(Musica Popular Brasileira)에 대한 정중한 소개글

보사노바와 MPB 중심의 브라질 음악 아카이빙을 해보겠다는 야심찬 생각으로 블로그를 연지 어언 6개월이 지났다. 브라질 음악(넓게는 라틴 아메리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공유하는 공간이 없고 관련 정보도 빈약한 현실이 아쉬워 시작한 것이다. 나의 공간이 생기면 하고싶은 말이 엄청나게 많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글을 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혹시나 틀린 말을 적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넘겨짚은 내용을 써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이다. 아마도 내심 이런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브라질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데다가 라틴 아메리카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포르투갈어도 이제 막 공부하기 시작한 내가, 그저 두 보정도 앞서나간 애정과 얄팍한 상식으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

파주 명필름 아트센터, 이야기의 힘으로 쌓아올린 공간

어떤 이유에서인지 파주를 참 좋아한다. 오래전 나를 파주로 처음 이끌었던 헤이리의 예술인 마을은 이젠 알록달록한 간판들이 즐비한 망한 유원지처럼 되어버렸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네는 영화와 책, 음악, 건축 등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여느 지역과는 다른 거리의 모습을 조성하고 있다. 자유로를 타고 복잡한 도심속을 벗어나, 어느덧 도로 위의 차들이 줄어들고 저멀리 평화롭고 잔잔하게 햇살을 받아내고 있는 임진강의 모습이 보일 때 - 그쯤되면 나의 마음은 평화로운 동시에 무척이나 들뜬다. 얼마 전에는 벼르고 벼르던 명필름 아트센터에 다녀왔다. 조용하게 영화를 한 편 보고 싶기도 했지만 목요일이라 상영이 없는 날이었고, 건축물과 내부 전시를 감상하고 오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찬찬히 건물 ..

내가 음반을 구입하는 이유

2021년 5월, 유니버설 뮤직 재팬에서 [1950~2000년대 브라질 음악 걸작선; Japanese Brazil's Treasured Masterpieces 1950-2000s]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통해 1950년대~2000년대 브라질 명반들을 재발매했다. 총 몇 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약 50여장의 앨범을 재발매 한 것 같다. 일부는 CD로만, 일부는 CD와 LP로 리이슈했다. 평소에 너무나 갖고 싶었던 앨범들을 무려 새 것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30장이 넘도록 질러버렸다. 몇 장은 이미 도착했고, 몇 장은 열심히 하늘을 날아오는 중이다. 한동안은 이 앨범을 하나씩 꺼내어 듣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주말이 너무 짧아 큰일이다. 유니버설 뮤직 재팬이 브라질 명반을 왜? 한편, 브라질도,..

파주 콩치노 콩크리트 (Concino Concrete)를 다녀와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느 순간 음악을 더 잘 듣기 위한 음향의 영역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나 또한 언젠가 정성들여 마련된 나만의 청음실을 갖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며 스피커 세계를 기웃거리던 와중.. 얼마 전 파주에 개관한 콩치노 콩크리트에 다녀왔다. 소리를 위해 설계된 공간과 쉽사리 들을 수 없다는 빈티지 스피커들의 위용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내일이라도 또 가고 싶은 곳이다. 단지 소리가 좋다거나 어쩌구의 차원이 아니다 - 얼마나 오랫동안 구상되어 온 공간인지, 이 공간을 마련한 이는 그동안 어떤 열정으로 이 공간을 기다려왔을지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멋진 사진을 찍어 웹상에 공유하고 있기에, 나의 후줄근한 사진들이 콩치노 콩크리트의 멋짐을 제대로..

문화 인프라의 핵심은 물리적 거기 있음에 있다 :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적 빈부격차에 대하여

이 글은 2021년 8월 16일에 썼던 글을 조금 다듬어서 남겨두는 글이다. 그날은 아마 예술영화 한편을 보려고 집 근처 상영관을 찾다가 포기했던 날인 것 같다. 가까운 곳에 영화 상영관 하나 없다는 사실에 잔뜩 뿔이 났었는지, 지방과 수도권의 문화적 빈부격차에 대한 생각을 마구 쏟아둔 것이다. 당시의 흥분은 가라앉은 지 오래지만, 이 글에 담겨 있는 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 지방의 문화 인프라는 서러운 수준 나는 10여년을 수도권에 살다가 2년 전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지방도시의 문화 인프라라는 것이 얼마나 빈약한지 서울과의 격차에 정말 놀랐다. 그냥, 갈 데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곳에 살기가 서러울 정도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뭐, 여..

은근히 취향 드러내기, 앨범커버를 담은 나만의 티셔츠 제작기

요즘은 취향이 드러나는 문구, 로고가 들어간 맨투맨 티셔츠 사는 것에 관심이 간다. 올초 연남동의 사운즈굿 레코즈에 갔다가 disk union 로고가 새겨진 맨투맨을 샀던 게 그 시작이다. 몇년 전 도쿄 여행 중 신주쿠의 디스크 유니온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마스코르 발레, 조빔, 레온웨어의 음반을 몇 장 사왔었다. 정말 천국이 따로없었지. (디스크 유니온은 지점마다 취급하는 장르가 조금씩 다른데 신주쿠의 디스크 유니온은 한 층 전체가 브라질 음반을 파는 곳이었다.) 그땐 대학원생이라 포기해버린 음반도 많았지만... 그 추억 덕분에 disk union 문구가 쓰여진 맨투맨을 입고 다니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은근 기대하면서. 이번엔 보사노바 티셔츠를 직접 만들어 입어보기..

'롱라이프 디자인을 전하는 상점' D&Department(디앤디파트먼트) 철학의 매력

이번 제주 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소는 제주 구도심에 위치한 디앤디파트먼트였다. 여행 마지막 날 들렀던 곳이어서 아쉬운 맘에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나름의 서사가 있었다. 1. 제주에서 마주한, 복제된 양산품의 나열 제주도에서 처음 이틀간의 여정을 생각해보면, 이런 식이었다. 유명하다는 스시 집을 찾아가 오마카세를 먹고, 유명하다는 요가원을 찾아 일일 수련을 하고,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고, 오설록 뮤지엄에서 프리미엄 티클래스에 참여했으며, 청담동에 본점이 있다는 클래식 바를 방문하고... 여하튼 뭔가 세련되고 좋아보이는 건 다했고 다행스럽게도 나쁘지는 않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제주도까지 와서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늘 생활..

제주에서 마신 커피들(비브레이브, 커피템플)

제주 곳곳에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고 있다. 얼마 전 제주를 방문 했을 때, 여행의 이정표 삼아 카페 두 곳을 다녀왔다. 2021년 10월의 기록. 1. 비브레이브 혁신도시점 서귀포에 머물며 올레 7-8코스를 다녀오는 여정이었기에, 올레 7코스에서 가까운 비브레이브 카페를 다녀왔다. 카페 주변엔 볼거리가 없지만 서귀포 여행하는 동안에는 잠깐 들르기에 괜찮다. 나는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그날따라 두 잔을 마시겠다는 욕심이 생겨 에스프레소를 선택했다. 두 잔의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데 배부름을 걱정했던 듯. 여튼, 이 곳에서는 Panama의 게이샤 원두로 내린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요즘엔 과테말라나 콜롬비아, 심지어 멕시코 등 다양한 지역에서 게이샤 커피가 생산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