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곳곳에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고 있다. 얼마 전 제주를 방문 했을 때, 여행의 이정표 삼아 카페 두 곳을 다녀왔다. 2021년 10월의 기록.
1. 비브레이브 혁신도시점
서귀포에 머물며 올레 7-8코스를 다녀오는 여정이었기에, 올레 7코스에서 가까운 비브레이브 카페를 다녀왔다. 카페 주변엔 볼거리가 없지만 서귀포 여행하는 동안에는 잠깐 들르기에 괜찮다.
나는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그날따라 두 잔을 마시겠다는 욕심이 생겨 에스프레소를 선택했다. 두 잔의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데 배부름을 걱정했던 듯.
여튼, 이 곳에서는 Panama의 게이샤 원두로 내린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요즘엔 과테말라나 콜롬비아, 심지어 멕시코 등 다양한 지역에서 게이샤 커피가 생산되지만 아직까지는 파나마에서 생산되는 게이샤가 가장 최고인 듯 하다. ABU 농장의 게이샤 원두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달달한 꽃향기와 청사과의 풋풋함이 조밀하게 느껴지는, 부드러운 산미를 즐길 수 있는 커피였다. 드립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Anaerobic 의 특징은 그다지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지역 : Boqute , 농장 : ABU COFFEE, 품종 : 게이샤, 프로세싱 : Anaerobic Washed, 고도 : 1,550m
- 컵노트 : 자스민, 체리, 바닐라, 청사과, 꿀
이어서 파나마 La Berlina 농장의 게이샤 원두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더 마시긴 했다. 두번째 잔이라서 감흥이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ABU 농장의 커피가 훠얼씬 맛있엇다.
2. 커피 템플
이젠 제주에서만 갈 수 있는 커피 템플. 중선농원의 창고를 개조하여 지었다는 카페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제주시내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카페를 연 자신감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해서 이 곳을 찾아갔었다. 운이 좋게도, 도착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템플이라는 이름처럼 마음이 편해지던 풍경.
이 날은 드립커피를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섰는데, 난 또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이 곳만의 블렌딩 원두를 맛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여행에 가면 꼭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되지 않는가? 성수동의 피어커피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3가지 시즌 블렌딩 중, 마드레스(Madres)를 마셨다.
코스타리카의 4가지 원두(라스 라하스 펠라네그라, 라스 라하스 알마네그라, 코르디예라 데 푸에고 아나로빅 내추럴, 코라존 데 헤수스 밀레니오 아나로빅)를 블렌딩한 이 커피는 무산소 발효 원두의 뉘앙스가 지배적인 커피였는데, 고릿한 향은 두드러지지 않고 와이너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푸어 오버가 너무 연하게 된 것인지 입안에 여운이 남지 않는 가벼운 피니쉬가 아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 번에 또 선택하고 싶은 커피는 아니었다.
뭔가 명성에 걸맞지 않는 커피라는 생각에 약간 갸우뚱하면서 내침 김에 루이지(Luigi)라는 원두를 사오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피어 커피와 협업한 시즌 블렌딩 중 하나였고, 200g에 30,000원수준이었으니 꽤나 비싼 축에 속하는 블렌딩이었다. 집에 와서 얼마 간 열심히 내려마셨는데 - 결론부터 말하자면 '맛있어서라기 보다는 특별해서' 값어치를 하는 원두라는 결론을 내렸다. 톡쏘는 라임향 같은 상큼함으로 시작하지만 얼마 안 가 씁쓸하고 무거워져서 견과류나 초콜렛이 떠오르는 꽤 복잡 미묘한 커피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커피 템플을 통해 경험한 두가지 블렌딩은 모두 불만이었나보다. 그렇지만 고작 한두잔의 커피로 특정 로스터리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선 안 되는 법. 섣불리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커피 템플의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에라도 그곳에 다시 갈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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