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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콩치노 콩크리트 (Concino Concrete)를 다녀와서

소심한 늑대개 2022. 1. 3. 00:59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느 순간 음악을 더 잘 듣기 위한 음향의 영역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나 또한 언젠가 정성들여 마련된 나만의 청음실을 갖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며 스피커 세계를 기웃거리던 와중.. 얼마 전 파주에 개관한 콩치노 콩크리트에 다녀왔다. 소리를 위해 설계된 공간과 쉽사리 들을 수 없다는 빈티지 스피커들의 위용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내일이라도 또 가고 싶은 곳이다. 단지 소리가 좋다거나 어쩌구의 차원이 아니다 - 얼마나 오랫동안 구상되어 온 공간인지, 이 공간을 마련한 이는 그동안 어떤 열정으로 이 공간을 기다려왔을지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멋진 사진을 찍어 웹상에 공유하고 있기에, 나의 후줄근한 사진들이 콩치노 콩크리트의 멋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접어두려한다. 내가 방문한 날, 나의 시선과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남겨본다.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올라 대문을 열면, 작은 로비가 등장한다. 입구에서 방문객을 반겨주는 것은 루이 암스트롱의 익살스러운 웃음이다. 

홀에 들어가기 위해 2층으로 들어서면 루이 암스트롱의 포스터가 보인다

콘서트 홀로 들어가는 길목. 프론트의 입구가 반투명 블라인드로 슬쩍 가려져 있는데 여기엔 마일스 데이비스가 서있다. 왠지 재즈를 좋아하는 분의 공간일 것 같아 기대가 더 커졌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려진 반투명 블라인드로 프론트를 가려두었다.

한국에서 오디오질(?)을 하시는 분들은 대개 클래식을 즐긴다는 나만의 편견이 있었던 지라 재즈 뮤지션들의 포스터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마구 가슴이 뛰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사장님은 정말이지 귀한 재즈 앨범을 하나 틀어주셨다(이 얘기는 뒤에서 이어간다). 나중에 찾다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콩치노 콘크리트는 1940-50년 교회에서 녹음된 재즈 명반을 실연처럼 재생하기 위한 규모로 설계/마련된 공간이라고 한다. 사장님은 분명 클래식보다는 재즈 애호가쪽일 것이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려면, 홀 뒤편에 있는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복도에도 루이 암스트롱이 웃고 있다. 더불어 우측의 창 또한 한 폭의 그림같다. 

2층에서 3층으로 연결되는 복도에도 루이 암스트롱

 

이 공간에 매료되는 이유는, 콩치노 콩크리트를 둘러싼 자연 경관까지도 모두 품고 있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어두운 홀의 모습과 대비되는 창밖의 모습을 보라! 홀의 좌측에 난 커다란 창을 바라보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창밖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참 황홀해진다. 지는 해가 바다를 발갛게 물들이는 모습. 창밖으로 저멀리 멀리 보이는 곳은 북한이라고 한다. 건축가는 파주에 들어선 콩치노 콩크리트의 장소성을 이렇게 부여했다.  

콩치노 콘크리트에서 보이는 저 바다 건너는, 북녘 땅이다

그리고 홀의 우측 편에는 LP 장과 축음기 컬렉션, 앰프와 플레이어 등이 놓여있다. 사장님은 저기 구석에 앉아있다가 음반이 다 돌고나면 다음 음반을 틀어주신다. LP의 특성상 한쪽 면을 다 재생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자주 갈아줘야 하므로 은근 바쁠 것이다. 공간을 방문한 이들의 연령대를 고려해서 재생목록도 달리 해야 할 것이고, 시즌도 고려해야 하고, 그날 주인장 맘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도 있겠지. 건물은 전체적으로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어 약간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이 공간에 쓰인 나무소재와 주황색 등이 따스함을 불어넣는다.  

홀 한 켠에 자리한 LP장과 다양한 컬렉션들, 그리고 중앙 홀에 마련된 감상 자리

 

나는 자꾸만 왼쪽 상단 구석에 있는 이 검은색 스피커에 눈길이 갔다. 현재 특별히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스팟 조명까지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의미있는 오브제일 것 같다. 

다른 무엇보다 왼쪽 상단 구석에 있는 이 검은색 스피커에 눈이 갔다. 무엇일까?

2층에서 바라본 모습. 이 사진에서도 왼쪽 상단 스피커의 존재감이 엄청나다. 무엇보다 저 그림자 때문에. 스피커 쪽을 바라보고 있는 빌리 홀리데이의 사진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2층 우측 구석에서 찍은 홀의 모습. 역시나 검은색 스피커에 눈이 간다. 빌리 홀리데이의 사진에도.

 

그리고 이 공간의 주인공인 스피커들. 웨스턴 일렉트릭의 M2, M3와 클랑필름의 유러노어 주니어라는 스피커가 놓여져 있다.

이 곳의 주역인 웨스턴 일렉트릭 M2, M3 스피커(중앙에 놓인 파란불빛 존)과 클랑필름 유러노어 주니어 (우측에 놓인 나무색)

월간 오디오 21년 10월호에 이 곳의 시스템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 이를 인용해둔다. 나는 오디오를 잘 몰랐음에도 청각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도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 

이곳의 주역은 웨스턴 일렉트릭과 클랑필름이다. 오디오에 대해 많이 공부해 보니 오디오 역사 중 한 시대를 풍미한 때가 1920-30년대이고, 그리고 그때의 극장 시스템이 정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시스템을 본인이 마련한 오디오 홀에서 모든 사람들과 나누었을 때 가장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 1920-30년대에 미국 대형 극장 중 럭셔리한 극장에서 대여해서 사용하는 최고의 시스템 웨스턴 일렉트릭의 M2, M3 스피커와 독일 역사에서 1920-30년대에 가장 독보적인 회사였던 클랑필름의 대형 극장용 스피커 유러노어 주니어(Euronor Junior) 스피커를 선택했다 

말하자면 이곳은 1930년대 미국과 독일의 대형 극장에서 울려 퍼지던 사운드를 본인의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것. 진정한 시간 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1930년대 아날로그 음향 원형 그대로 들려주기 위해 진공관에서부터 케이블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 스피커부터 소개하면, 모노 전용으로 웨스턴 일렉트릭의 M2가 정가운데 있는데, TA4181A 필드형 우퍼 4개와 26A 혼, 594A 드라이버 2개(세 자리 수 시리얼)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웨스턴 일렉트릭의 M3이 스테레오용으로 세팅되어 있는데, 각각 TA4181A 필드형 우퍼 2개, 26A 혼, 594A(네 자리 수 시리얼) 드라이버 1개로 구성되어 있다. 그다음 클랑필름의 유러노어 주니어가 있는데, 이 스피커는 클라톤, 유로딘을 설계한 칼 크루거 박사의 혼과 우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유러노어 주니어는 독일에서 한국으로 가져올 때 문화재 반출이라는 이유로 제지를 당하고, 한 달간 압류되었다가 해결이 되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웨스턴 일렉트릭의 경우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 수많은 어려운 과정들을 겪었다고 하니 더욱 특별하게 보인다.  (월간 오디오, 2021년 10월호)

2층에서 내려다 본 모습

어느새 해가 지고 창밖이 깜깜해졌다. 홀의 정면 벽에 난 빈 공간에 빔을 이용해 다양한 영상을 트는 것 같다. 콘서트 실황 영상을 비추며 실황 연주를 듣는다면 그야말로 공연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7시 경의 콩치노 콩크리트의 모습. 드문드문 청중들이 앉아 있다.
창 밖으로는 보이는 것은 어둠 뿐, 유리는 홀 안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춘다

 

어느덧 시간이 제법 흘러 일어나려던 차에 나를 다시 앉힌건 Art Blakey and Jazz Messengers의 음악이었다. 아주 좋아하는 넘버인 Dat Dere 가 나오기에 귀기울여 보니 - 처음 들어보는 Dat Dere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층 구석에서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던 나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가 재생 중인 앨범을 확인했는데, 1961년 도쿄 실황 앨범 'First Flight To Tokyo : the lost 1961 Recordings'이었다. 60년만에 공개된, 릴리즈 된지 막 한달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보였다. 이 앨범을 이 오디오 시스템으로 듣다니 이게 웬 횡재인가!  

마지막으로 듣고 온 앨범, 아트 블레이키 앤 재즈 메신저스의 도쿄 실활 앨범을 들었다. 이게 웬 횡재

이어서 나온 넘버는 'Round about midnight.  이 날의 기분을 간직하고 콩치노 콩크리트의 소리를 기억할겸  10분 남짓한 곡을 녹음해보았다. 비루한 녹음 상태에도 소리는 너무나 풍부하고 아름답다. 

'Round about midnight을 녹음해보았다. 

이 음악이 끝난 뒤에는 키스 재럿의 더 쾰른 콘서트 음반이 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역시 재즈 러버일 거라는 생각에 더 힘이 실린다. 

언젠가 미셸 페트루치아니의 'round about midnight 라이브 공연을 이 오디오로 들어보고싶다.


어떤  오디오 파일의, 아름답고 섬세한 정성으로 쌓아올린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듣게 될 새로운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들도 기대된다.  

아래 링크는 본문에서 인용했던 월간 오디오에 게재된 콩치노 콩크리트 소개 글이다. 이 곳의 주인장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두었는지, 그리고 함께 협업한 건축가는 어떤 사람인지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있다. 콩치노 콘크리트틑 더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길. 

 

Concino Concrete - 월간 오디오

예전에 들렸던 카메라타에서와 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의 경우 현대 하이엔드가 들려주는 고해상도 사진과 같은 음악과는 전혀 다른, 큰 호수의 인상주의 회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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