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음악사 9

[에필로그] 보사노바는 중단되고 간직되었기에 더욱 아름답다

Gilles Peterson의 책을 읽고 쓴, 보사노바의 등장과 부상 그리고 MPB의 등장을 다룬 8편의 연재가 끝이 났다. 거의 6개월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처음 시작할 때엔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 했다. 그저 영어로 된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의 역사, 정치, 사회문화에 무지했던 나는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문헌과 기사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 이윽고 브라질 음악에 참 다양한 이야기가 얽혀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따금씩은 새로운 앎과 소개에 대한 즐거움보다도, 내가 오역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브라질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순간..

8. 독재에 저항하는 대중음악으로서 MPB의 시작

1964년은 브라질에 있어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였다. Getz-Gilberto의 앨범이 미국 전역을 강타하며 엄청난 성공을 누렸고, The Girl from Ipanema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브라질 산 문화상품이 세계무대에서 이토록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분명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편 브라질 국내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주앙 굴라르 대통령은 냉전시대 자유주의 국가 체제의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미국의 지원 하 군사 쿠데타를 통해 물러나게 된다. 이 글에서 주앙 굴라르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굴라르의 실각은 미국의 음모라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인 것 같다. 그렇게 브라질은 기나긴 군부 독재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보사노바가 내포하고 있었던 희망과 번영에 대한..

7. 전세계를 열광시킨 보사노바, 그러나 암울한 독재의 시대로 들어서는 브라질

보사노바Bossa nova는 브라질의 경제 부흥의 꿈과 기대가 가득하고 모더니즘이 꽃피우던 1960년대 초,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비니시우스 데 모라이스, 주앙 질베르토로 대표되는 음악가들에 의해 시작된 서정적이고 세련된 음악이었다. 이는 곧 브라질 전역에서 사랑받는 새로운 음악적 양식이 되었고, 1962년에는 카네기홀 공연을 통해 미국에서도 열광받는 브라질 최고의 수출품이 되었다. 1964년에는 세기의 명곡 The girl from Ipanema가 전세계 음악 차트를 휩쓸었다. 애석하게도 이런 꿈과 희망의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어지러운 브라질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보사노바는 제2물결의 시기를 맞이한다. 세기의 명반 Getz-Gilberto의 탄생, 그리고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1962년 ..

6. 두 번의 무대와 보사노바 레이블의 출현

지난 5편을 통틀어, 보사노바가 생겨나던 시절 브라질과 전세계의 정치적 상황이 어떠했는지,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음악에 어떠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편에서는 '두 번의 무대와 보사노바 레이블의 출현'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한다.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보사노바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이다. 보사노바 3인의 무대, 그리고 The Girl from Ipanama 1962년은 두 번의 중요한 콘서트가 열린, 보사노바 역사의 아주 중요한 해였다. 음반 제작자였던 알로이시오 데 올리베이라Aloysio de Oliveira가 코파카바나의 아우본 구르메 클럽Au Bon Gourmet club에서 'Show of show'를 개최했는데, 보사노바를 탄생시킨 장본..

5. 냉전시대 보사노바의 진화

이번 편에서는 - '냉전시대 보사노바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냉전시대, 그리고 브라질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상황 속 보사노바가 어떻게 분화되고 변화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희망의 시대는 뒤로, 그러나 음악은 앞으로 나아간다 1959년과 1960년은 "보사노바"가 새로운 음악운동으로서 브라질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기였다. 편안하고 담백한 보컬, 익숙하지 않고 어딘가 낯선 멜로디에도 이내 편안하게 들리는 코드 전개, 그리고 보사노바만의 특유한 리듬이 이 음악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또한 자연과 사랑, 음악 그 자체를 노래하는 시적이고 아름다운 가사들도 보사노바의 특별한 요소였다. 이 모든 것은 브라질의 번영과 부흥을 꿈꾸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 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

4. 새로운 물결 Bossa Nova의 부상

이번 편에서는 - '새로운 물결 Bossa Nova의 부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역사상 첫번째 보사노바 앨범의 등장과 사람들이 어떻게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두 번의 첫번째 보사노바 앨범 보사노바라는 명칭을 부여한 Lyra, Menescal, Bôscoli, Leão 등의 모임은 1958 년 브라질 가수 엘리제테 카르도소Elizete Cardoso의 새 앨범 'Canção do Amor Demais'이 발표되었을 때 시작됐다. 카르도소의 1958년 앨범은 역사적으로 “첫번째 보사노바 앨범”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브라질판 롤링스톤에서 브라질 음악사의 100대 주요 앨범 중 하나로 꼽은 앨범이이기도 하다. 앨범은 발매 당시 그다지 유명세를 타지는 못했는데, 주로 클래식 음악과..

3. 보사노바의 시작 : 주요 인물의 등장

이번 편에서는 - '보사노바의 시작: 주요 인물의 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주요 인물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비니시우스 데 모라이스, 주앙 질베르토" 3명을 말한다. 이 3명이 각자의 삶을 살다가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마침내 보사노바가 창시되는 그 시절의 모습이다. 리우, 젊은 음악가들이 모이는 클럽,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이전 포스팅에서 1950년대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브라질 근대성의 근원지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시절, 리오의 음악 신에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젊은 음악 애호가들이 모여 아파트나 지하실을 음반과 사진으로 장식하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우상을 축하하는 비공식적인 공간으로서 '팬클럽'이 생겨난 것이다. 맨 처음으로 설..

2. 모더니즘 그리고 브라질리아

이번 편에서는 브라질에 찾아온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무려 모더니즘이라니, 너무나 큰 담론이지만 보사노바를 얘기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왜 인지에 대해서는 말미에 짧게 얘기해보겠다. 브라질 모더니즘의 분수령 : 현대미술주간 브라질의 모더니즘의 시작은 1922년 상파울루에서 열린 'Semana de Arte Moderna'(현대 미술 주간)라 보는 시각이 다수이다. 이 전시회는 시인 마리우 드 안드라지(Mário de Andrade)와 시인 오스왈드 드 안드라지(Oswald de Andrade), 화가 에밀리아노 디 카발카티(Emiliano Di Cavalcanti)와 아니타 말파티(Anita Malfatti), 작곡가 에리토 빌라로보스(Heitor Villas-Lobos)..

1. 바르가스 대통령과 삼바

1960년대 브라질의 현대 음악사를 연재하는 시리즈의 첫편. 여차여차하다보니 - 그 시작은 삼바가 브라질의 대표 음악이자 공연 문화로서 자리 잡게 된 배경인 1930년대 바르가스 대통령 집권에 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르가스 대통령의 집권 브라질은 -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 왕정체제를 거쳐 - 민주적인 정치체제로서 1899년 최초의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제1공화정은 전통적 과두지배자에 의해 좌우되었고, 사회 구조의 변화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외계층의 반란과 농촌 및 도시지역 노동자들의 빈번한 파업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호황을 누리던 커피산업마저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어려워지자 브라질은 불황에 늪에 빠지게 되었다. 시민들은 사회 전반의 변화와 요구를 수용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