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편을 통틀어, 보사노바가 생겨나던 시절 브라질과 전세계의 정치적 상황이 어떠했는지,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음악에 어떠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편에서는 '두 번의 무대와 보사노바 레이블의 출현'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한다.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보사노바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이다.
보사노바 3인의 무대, 그리고 The Girl from Ipanama
1962년은 두 번의 중요한 콘서트가 열린, 보사노바 역사의 아주 중요한 해였다.
음반 제작자였던 알로이시오 데 올리베이라Aloysio de Oliveira가 코파카바나의 아우본 구르메 클럽Au Bon Gourmet club에서 'Show of show'를 개최했는데, 보사노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가장 유명한 보사노바 가수 조빔, 모라에스, 질베르토를 등장시킨 것이다. 이는 세 사람이 함께 오른 첫번째 무대였으며, 쇼가 진행되는 6주간 매진행렬이었다. 세 명의 아티스트는 그들의 클래식 곡을 연주했고 비니시우스는 바덴 파웰과 함께 작곡한 새로운 작품도 선보이곤 했다.
또한, 당시 새롭게 발표된 곡이, 비니시우스와 조빔이 함께 쓴 - 'The Girl from Ipanema/Garota de Ipanema'였다. 뭐, 너무나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할 말이 많은 곡이라 이번 포스팅에서는 여기서 줄이기로 한다.

1962, Bossa Nova at Carnegie Hall
그리고 1962년 11월 21일, 뉴욕 카네기 홀에서 거대한 보사노바 콘서트가 열렸다. 오디오 피델리티 레코드Audio Fidelity Records의 시드니 프레이Sidney Frey가 주최한 행사였다. 프레이는 질베르토와 조빔이라는 두 보사노바 스타의 출연을 설득하기 위해 브라질로 갔는데, 브라질 관광청에서 외교적인 가능성을 보고 이 행사를 후원하기로 합의하면서 콘서트의 스케일이 엄청 커진 것이다.
조빔과 질베르토뿐만 아니라 카를로스 라이라, 세르지오 멘데스, 로베르토 메네스칼 등 많은 뮤지션들이 무대에 오르게 된다. 토니 베넷, 페기 리,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 등 많은 미국 스타들이 참석하여 함께 자리를 빛내주었다. 카르멘 미란다가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 참석하여 북미에 브라질 음악과 문화의 첫 선을 보인 이후, 브라질의 음악가/뮤직 스타가 가장 밝게 빛났던 행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콘서트는 아주 성공적이었고, 심지어 1987년에는 이 콘서트를 기념하는 25주년 콘서트가 또 열리기도 한다.

카네기홀 콘서트의 성공으로 질베르토와 조빔은 이후 몇 년간 미국에서의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세르지오 멘데스는 보사노바와 팝이 만난 독특한 장르를 만들면서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라질 뮤지션이 되었으며.주앙 도나토, 루이스 본파, 로린도 알메이다 등도 미국에 거주하며 보사노바와 브라질 음악이 미국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보사노바의 성공은 역으로 브라질에서 보사노바의 영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전에는 리우데자네이루에 한정된 음악운동이었지만, 브라질 전역에 보사노바의 존재를 알리게 된 것이다.
보사노바의 정체성, 엘렌코 레코드 Elenco Record의 설립
한편, 리우에서 보사노바 3명의 거장을 무대에 올렸던 알로이시오는 오데온ODEON 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오데온 레코드가 더이상 보사노바 가수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지 않는 데에 실망하고 1960년 말 오데온을 떠나게 된다. 이 때 오데온에서 앨범 제작을 무산시킨 아티스트들이 실비아 텔레스, 세르지오 리카르도, 루시오 알베스 등이다. 알로이시오는 필립스로 자리를 옮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음반사인 엘렌코 레코드 Elenco Records를 설립한다.
1963년~1968년 사이, 엘렌코는 비니시우스, 조빔, 바덴 파월, 세르지오 멘데스 등과 함께 60개 이상의 획기적인 앨범과 함께 놀라운 제2의 물결의 보사노바 아티스트들의 데뷔 앨범을 발매한다. 그 중에는 나라 레낭, 에두 로신하 데 발렌사, 레니 데일, 로베르토 멘데스가 있었다.
엘렌코 레이블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앨범 커버에 관한 것이다. 엘렌코는 함께한 디자이너 빌라 Cesar G Villela 와 사진작가 페레이라 Chico Pereira에게 완전한 예술적 자유를 부여하였고 그들은 심플하면서도 혁명적인 보사노바 만의 앨범 커버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와닿는 검은색, 빨간색, 흰색 슬리브는 주요 레코드 회사들에 의해 곧 모방되었다.

이 시기 엘렌코 레코드는 보사노바는 음악적 정체성과 시각적 정체성을 모두 정의하며, 이 새로운 음악적 운동의 다층적인 모습을 "포착"해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재정적 뒷받침이 없었고, 적절한 앨범 배급 방법을 찾지 못했던 엘렌코는 리오의 조나 술(리오의 서쪽, 소우주라고 일컫던 곳)에서 주로 판매되었고 몇 천 부 이상 판매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레이블의 확장, 주류 무대로 들어선 보사노바
상파울루의 음반 회사들은 엘렌코 레코드가 리오에만 머물러있는 틈을 타서, 상파울루의 아티스트들과 리오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들을 모두 영입하였으며 성장하는 상파울루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RGE 레코드는 아우구스티노 도스 산토스, 완다 사 등의 앨범을 제작했고. 오디오 피델리티 레코드사의 브라질 사업부는 밀튼 바나나 등의 음악을 발표했으며, 파루필하 레코드는 종고 트리오, 호세 다 콘시카오 등의 음악을 발표했다.
필립스 Philips 레코드는 초기에는 침묵하였으나, 아르만도 피틸리아노Armando Pittigliano의 새로운 지휘 하에 카를로스 라이라, 오스 카리오카스, 탐바 트리오, 나라 레앙, 발터 에우미르 데오다토, 호르헤 벤, 그리고 나중에 엘리스 레지나와 함께 브라질에서 보사노바를 발매하는 주요 음반회사가 되었다.호르헤 벤의 첫 번째 앨범 'Samba expe Esquena Novo'(1963)는 즉시 히트하여 브라질에서 10만 장 이상이 팔렸다.
곧 브라질의 주요 도시들은 레시페Recife의 로젠블릿Rozenblit과 같이, 보사노바를 발매하는 작은 레이블을 갖게 되었다.
보사노바 더 이상 리오만의 음악이 아니게 되었고 이렇게 음악산업의 주류무대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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