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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과일을 먹은 페미니스트
솔로로 활동하기로 마음먹은 1972년, 리타는 묘하게 음정이 맞지 않는 것 같은 자신의 목소리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고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 두려워지는 등 가수로서의 경력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밴드 탈퇴 후 방문한 런던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고 다시금 동력을 얻게 된다. 런던 여행 중 데이비드 보위과 믹 재거의 글램 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Ziggy Stardust’가 바로 1972년에 발표되었다.) 금기를 희롱하는 전통적 복장 관습의 파괴, 충격적일만큼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데이비드 보위의 무대는 그녀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본래 여성스러운 히피 스타일을 즐겼던 리타는 이후 데이비드 보위처럼 중성적인 스타일과 빨간색으로 염색한 머리 등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빨간 뱅헤어는 2010년대 중반까지도 유지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브라질로 돌아온 리타는 Rita Lee &Tutti Frutti 라는 그룹을 결성해 두 번째 밴드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는 관습과 규율에서 무한히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했고 군부 독재 시기 브라질에서 금기시되었던 섹스, 동성애, 낙태, 마리화나 합법화 등에 대해 노래했다. 그리고 1975년에 발매된 [Fruto Proibido](금지된 과일) 앨범이 20만 장 이상 팔리면서 ‘브라질 록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앨범 제목과 동명의 노래 ‘Fruto proibido’에서 리타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내게 내 자신을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나요? / 세상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게 있어요 / 금지된 과일을 먹는 것 / 그것은 거부할 수 없다는 걸 모르시나요? / 이 과일에는 천국이 숨겨져 있는 걸…” 1977년 지우베르투 지우와 함께 한 앨범 [Refestança]에서 부른 ‘E Proibido Fumar’는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리타 리는 어느새 ‘혁명적이고 강렬한 여성’이자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되었다. 남성 중심의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당시 록이라는 장르에서 밴드를 리딩하고, 곡을 직접 쓰고, 무대 위에서 일렉 기타를 연주하며 자유분방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준 리타의 모습은 그 자체로 페미니스트였던 것이다.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리타는 마초이즘이 지배하는 로커들 사이에서 여성도 똑같이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갈고 해냈다고 회상했다. 리타는 드럼, 기타, 피아노, 하모니카, 오토하프 등 다양한 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 있었고 녹음에 일렉 기타를 사용한 최초의 브라질 음악가로도 알려져 있다.
빨간 머리의 리타 리 : 브라질 록의 여왕
1970년대 후반, 그녀는 투어에 함께 하곤 했던 기타리스트·작곡가 로베르토 드 까르발류Roberto de Carvalho와 결혼해 연인이자 음악적 동지로서 인생을 함께하게 된다. 그리고 그룹이 아닌 솔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시기부터 리타의 음악은 디스코와 팝의 영향이 짙어지면서 보다 더 대중적으로 변화한다.
리타와 로베르토 두 사람이 함께 한 첫 번째 앨범이자 리타의 첫 번째 솔로 앨범에 실린 ‘Mania de Você’는 그녀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 이 노래는 여성의 성감과 쾌락에 대한 도발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 “내 사랑, 당신은 내 입을 촉촉하게 만들지/ 우린 판타지를 입고 옷을 벗어 / 우리가 나눈 키스 때문에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그 옷을 말야…” 이어서 1980년에 낸 [Lança perfumes]는 브라질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히트를 치며 커리어의 정점에 이른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Baila Conmigo(1982)], [Flerte Fatal (1987)]와 같은 앨범을 내며 전성기를 함께 했다.
리타는 2010년대까지도 앨범을 내고 투어를 하며 뮤지션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특히 2017년에 낸 그녀의 자서전은 브라질에서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한편, 그녀는 자서전을 통해 마약 남용으로 고통을 겪었던 경험과 후회되는 감정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했다.그리고 자신의 비석에 적혔으면 하는 문장으로 이런 말을 썼다.
‘그녀는 좋은 본보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머러스하고 활기 넘치는 그녀의 무대나 인터뷰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하. 정말 리타답군!’
이 글은 재즈피플 23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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