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매력덩어리(Encanto do canto), 가우 코스타(Gal Costa)
1960년대 초반의 브라질에는 나라의 발전과 안정, 번영에 대한 희망이 가득했다. 젊은 사람들은 현대적으로 건설된 도시의 아파트에서 세련된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고, 이때 탄생한 보사노바는 미국 무대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브라질 최고의 수출품이 되었다. 음악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며 활기차게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브라질에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자 예술가들은 이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특히 음악의 영역에서는 약 20년간 삼바, 보사노바, 락, 재즈 등을 브라질의 전통 음악과 결합하며 발전시킨 브라질의 대중음악 MPB(Música popular brasileira)가 무르익게 되는데, 트로피칼리아(Tropicália) 무브먼트(열대주의 운동)라고 불리는 그것이 바로 그 시작점이다. 그리고 트로피칼리아 무브먼트의 주역은 4명의 바이안(Bahia 출신의 사람) 카에타노 벨로주, 지우 지우베르투, 마리아 베서니아, 그리고 가우 코스타였다.
그런 가우 코스타가 작년 겨울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노래하는 매력덩어리’라고 칭한 건 그녀의 오랜 음악적 동지 지우 지우베르투다. 새소리처럼 높고 청량하면서도 도전적이고 당당한 에너지를 가진 가우 코스타의 목소리는 굴곡진 브라질의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주앙 질베르토가 예견한 그녀의 미래
가우 코스타의 음악은 보사노바로부터 출발한다. 14살이었던 1959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Chega de Saudade’를 통해 처음 보사노바를 접한 이후, 그녀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주앙 질베르토의 음악을 들으며 가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18살 무렵 카에타노 벨로주를 비롯한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고 1964년 그들과 함께 고향 바이아를 떠나 리우에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던 1965년 어느 날, 가우 코스타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주앙 질베르토를 만나 그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한번도 음악을 배운 적은 없지만 청아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 주앙 질베르토는 조용히 그녀의 노래를 듣다가 마침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라치냐(본명), 당신은 브라질의 위대한 가수입니다.
가우 코스타의 미래를 내다본 한마디였다고 할 수 있겠다.
가우 코스타가 어떤 모습으로 음악 신에 등장했는지는 카에타노 벨로주와 함께한 데뷔 앨범 [Domingo](1967, Philips)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당시의 그녀는 첫 번째 트랙 ‘Coração Vagabundo’처럼 보사노바의 영향을 받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들에 빠져있었다.


트로피칼리아 무브먼트를 대표하는 목소리
그렇지만 그녀를 정말 위대한 가수로 인정받게 만든 것은 바로 1968년부터의 행보일 것이다. 가우 코스타는 트로피칼리아 음악가들에 대한 소개이자 무브먼트의 시작을 알린 선언문과 같은 앨범 [Tropicália: ou Panis et Circenses]에 참여했다. 그녀는 카에타노 벨로주와 지우베르투 지우의 노래를 부르며 트로피칼리아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트로피칼리아 운동은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적 규범에 맞섬과 함께 영미권과 유럽의 문화를 브라질식으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이는, 새로운 ‘브라질다움’을 주창하는 매니페스토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시각예술, 문학, 연극 등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 브라질의 반문화(히피)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음악 영역에서의 트로피칼리아 운동은 영미권 팝·락 문화에서 파생된 일렉 기타와 드럼 소리를 브라질의 삼바, 마라카투, 카포에이라 등을 결합한 스타일로 전개되었다. 기타, 아코디언과 같은 어쿠스틱한 소리에 익숙했던 대중들에게 전자악기의 소리는 무척이나 새로웠던 데다가, 정부의 억압을 비판하거나 브라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들의 가사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특히 가우 코스타가 불렀던 벨로주의 곡 ‘Baby’는 이런 가사를 담고 있다. “당신은 영어를 배워야 할 거에요. 그리고 당신이 무얼 알고 모르는지도요. 나와 함께라면 하늘은 늘 푸르고, 당신과 함께라면 모든 게 좋을 거에요. 우리는 남미에서 가장 좋은 도시에 살고 있는걸…”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동시에 브라질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노래한다. 그녀의 첫 번째 솔로 앨범 [Gal Costa(1969)]에 수록되기도 했던 이 노래는 많은 브라질인들의 사랑은 받은 히트곡이었다.
그리고 [Gal Costa] 이후 약 한 달만에 발매한 두 번째 앨범 [Gal(1969)]에서는 보다 실험적이고 급진적으로 분위기가 바뀐 음악을 선보인다. 브라질의 전통 음악이 느껴지는 ‘Pais Tropical’, 락의 느낌이 훨씬 더 짙어진 ‘Meu Nome é Gal(내 이름은 Gal)’과 같은 곡이 수록되어 있다. ‘Meu Nome é Gal’에서 가우는 정말 사랑스럽게 노래를 부르다가는 갑자기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울부짖는다, 바로 이런 가사와 함께. “내 이름은 Gal 이야. 그리고 난 괜찮아. 그가 백인이 아니고, 문화가 없어도 말야. 난 그를 똑같이 사랑해줄 거야. 그에게 단점이 있더라도 가슴 속에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카에타노 벨로주와 지우 지우베르투가 정권에 의해 런던으로 추방당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급진적인 노래를 썼다는 이유였다. 어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추방당하면서 트로피칼리아 무브먼트가 조기에 종료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남긴 에너지와 영향력은 브라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되었다. 특히 그들의 뮤즈였던 가우 코스타는 브라질에 담아 벨로주와 지우베르투의 노래를 멈추지 않고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포스트 트로피칼리아의 중심에 있었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가우 코스타Gal Costa의 음악세계 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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