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아스트루드 질베르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 최근 우리 곁을 떠난 세명의 브라질 아티스트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쓰자는 마음을 먹었었다. 여기서 이 세 명이란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가우 코스타, 그리고 리타 리다. 브라질 대중 음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을 보사노바-트로피칼리아 무브먼트-MPB의 태동기에 나타난 이 뮤지션들을, 특히나 여성으로서 60-70년대를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리즈인 리타 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록이라는 장르가 그리 인기가 없는 요즘, 리타 리의 음악은 세 아티스트들 중 가장 진입장벽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노래를 만드는 사람인지 알고 나면 그녀의 음악이 궁금해지리라 확신한다. 나 역시도 그녀의 초기 음악(록에 가까운)은 그리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 글을 쓰며 그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리타 리Rita Lee는 ‘트로피칼리아 무브먼트’의 시작을 함께 한 밴드 Os Mutantes의 멤버이자, 1960-70년대 브라질의 사이키델릭 록 장르를 발전시킨 아티스트이다. 남성 중심의 록 문화 속에서 드물게 여성 아티스트로서 정상에 올랐고, 보수적인 사회의 금기를 건드리고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리타를 소개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느낌이 들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타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머리와 화려한 패션만큼이나 통통 튀고 위트 넘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스 무챤챠스는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다른 행성에서 왔어요.”
리타 리는 부모님께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드럼 세트를 사달라고 할 정도로 ‘유별난’ 여학생이었다. 아직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하던 1960년대, 여학생들이 피아노나 어쿠스틱 기타는 쳤어도 드럼을 치는 경우는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리타는 고등학생 시절 비틀즈에 빠져 친구들과 밴드음악을 연주했고, Tony Campelo, Jet Blacks와 같은 뮤지션들의 무대에 백업 보컬로 서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친구들과 O’seis(여섯 명)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1966년 싱글 [O Suicida]를 녹음했다. 앨범에는 실린 ‘O Suicida’와 ‘Apocalipose’ 두 곡은 각각 사이키델릭 록과 두왑(doo wap)의 무드를 담고 있었는데, 그 후에 이어진 음악 인생의 예고편과도 같은 싱글이었다.
첫 번째 앨범은 꽤나 완성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 했는데, 이에 실망한 멤버 3명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밴드를 떠난다. 그리고 남은 3명(리타 리Rita Lee, 아르날도 밥티스타Arnaldo Baptista and 세르지오 디아스Sérgio Dias)이 새로운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이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오스 무챤챠스Os Mutantes(돌연변이들)가 되었다. 당시 유명한 가수였던 로니 본Ronnie Von의 TV쇼에 게스트 밴드로 나가게 된 것을 계기로 로니 본이 Os Mutantes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로니 본 쇼에서의 무대를 통해 오스 무챤챠스는 여러 작곡가와 연출자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마침내 1967년 제3회 브라질 대중음악 축제(III Festival of Brazilian Popular Music)에서 지우베르토 지우Gilberto Gil의 백업 밴드로 무대에 서게 된다. 이 사건을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리타 리와 지우베르투 지우와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지우베르투는 트로피칼리아 운동의 구심점이자 리타 리 음악 인생의 정신적 지주였다. 리타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지우베르투는 내게 다채로운 브라질을 알려준 사람이에요. 내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배운 것도 지우베르투로부터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우베르투는 당시 그가 탐구하고 있었던 트로피칼리즘 색깔의 복잡하고 정교한 편곡의 신곡 ‘Domingo no Parque’를 뒷받침할 밴드를 찾고 있었는데, 오스 무챤챠스가 리허설에서 이를 훌륭하게 해내는 것을 보고 함께 무대에 설 것을 제안한다. 음악적 공감대를 확인한 이들은 마침내 1968년 트로피칼리아 무브먼트의 매니페스토 [Tropicalia: ou Panis et Circenses] 앨범에 함께 했고, 오스 무챤챠스는 Polydor사와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데뷔 앨범 [Os Mutantes]에 실린 ‘Panis et Circenses(빵과 서커스)’는 지우베르투 지우와 카에타노 벨로주가 오스 무챤챠스를 위해 특별히 만든 곡이었다. 이 노래의 제목인 ‘빵과 서커스’는 고대 로마의 시인의 표현으로, 권력자로부터 무상으로 주어지는 음식(빵)과 오락거리(서커스)에 의해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고 자신의 의무에 대해 태만해지는 모습을 지적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권태로움을 표현하는 듯 단조롭게 반복되는 멜로디, 테이프가 늘어지는 듯한 중간부, 그리고 한껏 고조되다가는 와장창 산산조각 나고마는 유리 깨지는 소리. 이 노래의 가사는 바로 이런 내용이다. “나는 태양이 비추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 / 나는 바람을 타기 위해 돛을 올렸지 / 마당에는 호랑이와 사자들을 풀었어 / 하지만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사느라 바쁠 뿐…”
리타 리는 상파울루 신문과의 첫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서 다른 행성에서 왔어요”.
브라질 특유의 리듬을 섞은 사이키델릭 록과 묘하게 녹아있는 미국의 흑인음악, 메시지를 담은 가사, 과장된 의상과 화려한 무대는 오스 무챤챠스만의 특징이었다.
1969년, 군부 정권에 의해 지우베르토 지우와 카에타노 벨로주가 영국으로 추방되면서 트로피칼리아즘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이 시기부터 오스 무챤챠스는 본인들만의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데에 집중하게 되고 본격적인 록 앨범 [A Divina Comédia ou Ando Meio Desligado (1970)]을 발표한다.
앨범 제목은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에서 따온 것으로 앨범 자켓 또한 저승세계로의 여행이나 부활이 떠오르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각 사이의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듯 몽환적인 음악은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오스 무챤챠스 음악의 시작점으로 꼽힌다. 특히 타이틀곡 ‘Ando Meio Desligado’는 엄청난 히트를 쳤다. “나는 계속 멍 때리고 있어 /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 /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 내가 생각하는 건 그저 너가 나를 원할까 하는 것…”
리타 리는 오스 무챤챠스의 멤버로 총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밴드 멤버들도 함께 한 자신의 솔로 앨범을 두 장 발표한다. 그리고 1972년에 발표한 [Mutantes e Seus Cometas no País do Baurets]을 끝으로 그룹을 탈퇴해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리타 리(Rita Lee)의 음악여정 2으로 이어집니다.
리타 리(Rita Lee)의 음악여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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