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음악/Artist

아스트루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의 삶과 음악 2

소심한 늑대개 2023. 6. 26. 00:37

솔로이스트로서의 아스트루드 : 보사노바의 빛나는 얼굴이자 목소리

다행히 스탄 게츠 콰르텟의 게스트 보컬로 활동하는 동안 아스트루에게 다양한 제안이 들어왔고, 게츠와의 계약이 끝난 1964년 12월부터 자신의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1965년부터 1971년까지 아스트루드는 Verve와 CTI Record에서 총 10장의 앨범을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아래는 내가 뽑은 <기억할만한 앨범> 네 장이다. 

[The Astrud Gilberto Album, Verve/1965]

아스트루드의 첫 번째 솔로 앨범. ‘오리지널 보사노바 군단’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주앙 도나투가 참여했고 색소폰과 플롯에는 버드 생크가 참여했다. Agua de Beber, How Insensitive, Dreamer 등 당대에 가장 사랑받은 보사노바 곡들이 수록되었다. 2017년에는 NPR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 아티스트 앨범 150개] 중 7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The Shadow of Your smile / Verve/1965]

샌프란시스코의 한 재즈클럽에서 우상이었던 쳇 베이커의 공연을 보던 중, 쳇 베이커가 아스트루드를 무대 위로 불렀다. ”저와 노래를 한 곡 해주시겠어요?“ 아스트루드는 쳇 베이커와 함께 할 만한 영어 레퍼토리를 생각하다가 ‘Fly me to the moon를 청했다. 아스트루드는 이날의 공연의 너무 마음에 들어 자신의 앨범 [The Shadow of you smile]에 이 노래를 실었다. 앨범에서의 트롬본은 밥 브룩마이어가 맡았다.
 
[Look to the Rainbow, Verve/1966]

재즈계의 가장 위대한 오케스트레이터로 인정받는 Gil Evans가 편곡에 참여한 앨범. Berimbau, Eu Preciso Aprender a Ser só (Learn to Live Alone) 등 새로운 스타일의 보사노바 곡들이 수록되었고 기존의 앨범보다는 조금은 더 스케일이 크면서도 절제된 느낌의 앨범이다.

 
[September 17, 1969, Verve 1970]

특이하게도 녹음한 날로 제목을 정한 앨범으로 Brooks Arthur가 제작했다. (1975년 쟈니스 이안의 데뷔앨범으로 그래미상을 받은 제작자이다) 5번 트랙(Canto de Ossnha) 한 곡을 빼고는 모두 영어로 녹음되었고, 2번 트랙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Holiday’. 어딘가 블루스나 포크 풍이 물씬 나는 앨범이다. 솔직히 보사노바 스타일을 매우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조금은 당황스러울 만한 앨범. 그렇지만 그녀의 음악사를 이해해보자는 측면에서 들어볼 수는 있겠다. (앨범 커버에서 얼굴을 빼고 맨하탄 거리의 사진을 실은 것을 보더라도, 무언가 변화를 시도한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기 아스트루드는 크리드 테일러와 성공적인 앨범을 많이 만들긴 했지만 앨범 전반의 만듦새에 일조한 역할은 인정받지 못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순진하고 비물질적이었던데다가 ‘제작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자신이 없어 계약서에 무언가를 요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신인 시절 세션이 120달러를 받고 노래를 불렀던 그녀가 갑자기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따금씩은 녹음에 참여하고도 크레딧을 받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음반사들은 이를 이용해 아스트루드도 모르게 앨범을 발매하고 돈을 벌기도 했다.

‘제작자’로 우뚝 선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음악

그런 그녀가 제작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발행한 첫 번째 앨범이 바로 [Now, Perception/1972] 앨범이다. 이 앨범에서는 자신이 작곡한 곡도 처음으로 선보이는데, 종전까지의 앨범과는 다르게 트로피컬한 사운드가 살아나고 포르투갈어 곡의 비중도 커졌다. 이 이후로 나온 앨범에서 그녀는 모두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다. 몇 년 후, The Girl from Ipanema를 디스코 풍으로 편곡하여 실은 [That Girl from Ipanema(Polydor, 1977)]이 발표된다. 이 앨범에는 쳇 베이커와 듀엣으로 노래한 ‘Far away’도 실려있다. 아스트루드와 쳇 베이커와 함께 녹음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그녀는 그 순간이 자기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했다. (그녀는 쳇 베이커의 열혈팬이었다.)

이윽고 1982년, 아스트루드의 아들 마르셀로가 베이스로서 그녀의 그룹에 합류한다. 아스트루드는 이 시기에 자신의 음악 세계가 부활했다고 표현한다. 아들과 함께 하며 정서적으로 편안해졌고, 밴드의 구성에 색소폰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트롬본을 추가했으며, 투어에서도 자신이 쓴 곡의 비중을 늘렸다. 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아들 파올로 조빔Paulo Jobim도 그룹에 함께 하여 곡을 쓰거나 노래를 불렀다. 독일의 재즈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인 James Last와 함께 녹음한 앨범[Plus]는 이 시기 그녀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스트루드의 보컬은 여전히 아름다우면서도 - 데뷔 초반의 수줍음이 아닌 능숙함이 느껴진다. 앨범의 1번 트랙(Samba do Soho)은 파올로 조빔의 곡이며, 그는 1번과 5번 트랙(Moonrain)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트랙 Água de Beber.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의 트랙과 비교해 들어보면 20여 년의 세월이 실감날 것이다.

[Now, Perception/1972] [That girl from Ipanema, IMAGE/1977] [Plus (with the James Last Orchestra), Polydor/1986]

 

가장 아스트루드다운 그녀의 마지막 앨범

그 후 길고 긴 공백 끝에 아스트루드는 마지막 앨범 [JUNGLE, Magya/2002]를 발표한다. 라틴 아메리카 음악의 다양한 소리와 리듬에 Funk와 힙합이 가미된 앨범으로 10곡 중 8곡이 아스트루드의 자작곡이다. 아마존을 떠올리게 하는 ‘Jungle’, 포르투갈어 랩이 등장하여 그녀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생각하게 하는 ‘Rebola, Bola’. 그러면서도 빼놓지 않은, 그녀의 팬들이 사랑하는 아스트루드 식 발라드 ‘Dancing’, ‘Ocean Dreams’ 등. 우리가 잘 아는 ‘The Look of Love’도 삼바가 가미된 펑키한 스타일로 새롭게 불렀다. 그녀의 초창기 앨범과는 분명 다른 스타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앨범이다.

고백컨대 나는 아스트루드가 세상을 떠난 지금에서야 [JUNGLE] 앨범을 처음으로 들어보았다. 그리고 그간 ‘순수한 소녀스러운 목소리’라는 기대 때문에 보지 못했던 진짜 아스트루드의 얼굴을 이제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이가 들고 원숙해진 그녀의 세계는 궁금해하지 않고 1964년 ‘The Girl from Ipanema’ 속 아스트루드가 영원하기를 고집부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스트루드 질베르토라는 아티스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앨범은 [Getz/Gilberto]도, [The Astrud Gilberto Album]도 아닌, [JUNGLE]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앨범을 내기까지의 긴 공백기동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작은 인디 레이블 Magya에서 제작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앨범은 미국에서 공식 판매되지 못하고 일본에서만 정식으로 발매되었다.

[Jungle, Magya/2002]

앨범 [JUNGLE]을 끝으로 아스트루드는 음악계를 은퇴했다. 그녀는 음악산업에 종사하는 동안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언론으로부터 받은 계속된 비난에 아파하는 등 많은 상처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아스트루드의 아들 마르셀로는 한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은 항상 따뜻한 본성과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은퇴한 그녀는 철학, 그림 그리고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캠페인에 관심을 두었고, 2011년에는 본인의 홈페이지에 동물 학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침묵 끝에, 아스트루드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에 하게 된 착각일까. 아니면 데뷔하자마자 많은 팬들을 갖게 된, '일찌감치 성공한 가수'로 그녀를 바라봐서였을까. 나는 그동안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삶과 음악 여정이 그저 순탄했을 거라고 짐작해왔던 것 같다. 그야말로 The Girl from Ipanema처럼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가수가 아니었을까하는 그런 느낌. 하지만 그녀의 삶과 음악을 돌아보고나니 아스트루드는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온전히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야말로 치열한 인생을 살아낸 여성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나 그것이 1960년-70년 즈음에 해내야만 했던 일이라는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무엇보다 그녀가 제작자로서 남긴 앨범들이 Verve에서의 색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며, 그 정점에서 마침표를 찍은 것 같아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아스트루드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다른 방식으로 풀려 하지  않고 철학과 그림 등을 공부하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치유하려고 했다는 점도 참 인상깊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권 재즈/팝 팬들에게 아스트루드는 앞으로도 [Getz/Gilberto]의 목소리로 기억되고 사랑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역사의 한 단면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넉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스트루드. 2000년대 초반 즈음으로 추정된다.

 

<참고> 

 

Astrud Gilberto - Official Homepage

Copyright by Astrud Gilberto. All Rights Reserved. The unauthorized reproduction of this text or of any portions thereof is strictly prohibited by applicable USA and international laws. "The finest clothes turn to rags. Be careful all day long"  -  from

www.astrudgilberto.com

 

The sad story of Astrud Gilberto, the face of bossa nova

Without the 22-year-old’s voice, ‘The Girl From Ipanema’ would not have become the phenomenon it did – but mistreatment, misogyny and lack of compensation wore her down, writes Martin Chilton

www.independent.co.uk

 

Brazilian Astrud Gilberto, who sang 'The Girl From Ipanema,' is dead at 83

Her classic song made bossa nova and Brazilian jazz famous around the world.

www.nb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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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재즈피플 23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