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음악/1960년대 브라질 음악사

3. 보사노바의 시작 : 주요 인물의 등장

소심한 늑대개 2021. 10. 18. 12:31

이번 편에서는 - '보사노바의 시작: 주요 인물의 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주요 인물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비니시우스 데 모라이스, 주앙 질베르토" 3명을 말한다. 이 3명이 각자의 삶을 살다가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마침내 보사노바가 창시되는 그 시절의 모습이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왼쪽), 비니시우스 데 모라이스(가운데), 주앙 질베르토(오른쪽)


리우, 젊은 음악가들이 모이는 클럽,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이전 포스팅에서 1950년대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브라질 근대성의 근원지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시절, 리오의 음악 신에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젊은 음악 애호가들이 모여 아파트나 지하실을 음반과 사진으로 장식하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우상을 축하하는 비공식적인 공간으로서 '팬클럽'이 생겨난 것이다.

맨 처음으로 설립된 팬클럽은, 당시 리오의 10대들의 우상이었던 Frank Sinatra와 그의 브라질인 음악 파트너 Dick Farney의 이름을 딴 Farney-Sinatra 클럽이었다. 당시 팬클럽은 단순히 좋아하는 음악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함께 음악을 즐기는 '동아리'의 성격을 띄었는데, Farney-Sinatra 클럽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영감을 주는 무언가를 해야하는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 클럽에서 배출된 뮤지션으로 피아니스트 João Donato와 색소폰 연주자 Paulo Moura가 있다.) 이어서 Dick Haymes Lúcio Alves, 미국 재즈 밴드 리더 Stan Kenton과 Glenn Miller 등을 기리기 위한 클럽들이 설립되었다. 레코드 플레이어와 피아노가 있었던 이런 공간이 브라질 최초의 디스코텍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팬클럽에서 활동하던 젊은 뮤지션 중 몇몇이 프로가 되면서 플라자 호텔 댄스홀의 야간 잼 세션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소규모 클럽은 Tom Jobim, João Donato, Baden Powell, João Gilberto, Ed Lincoln 및 Luiz Eça와 같은 많은 지역 뮤지션들이 즐겨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캐치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활동했던 뮤지션 중 한명이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다. 1950년대 초, 조빔은 Odeon에서 예술감독으로 일하고 Rio의 클럽과 바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Odeon Records : 젊은 시리아 출신의 감독 André Midani가 운영하던 브라질 기반의 다국적 레코드 회사



비니시우스 데 모라이스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한편 브라질의 새로운 수도이자 모더니즘의 상징인 브라질리아의 건설이 발표된 1956 년, 브라질리아의 건축가로 임명된 오스카 니마이어는 리우의 시립극장에 올릴 연극의 무대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무대에 올리려던 연극의 제목은 'Orfeu da Conceição(흑인 오르페)'으로, 브라질 시인이자 외교관이며 브라질 부영사로 일하고 있던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Vinicius de Moraes의 작품이었다.

* Orfeu da Conceição : 리우의 언덕에 있는 '빈민가 마을'(Favela)을 보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대한 고전 그리스 비극을 토대로 쓴 작품


모라이스는 후에 보사노바 곡들에 아름다운 가사를 붙인 작사가이자, 보사노바를 만드고 알리는 데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음악가 부모의 아들이자 Rio의 엘리트 교육의 수혜자였던 모라이스는 1946 년부터 브라질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할리우드 파견 당시 올슨 웰스, 카르멘 미란다 등 미국의 스타들과 인맥을 형성하였고 보사노바가 미국에서 제작되는 데에 꽤 많은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는 내 뇌피셜,,). 그리고 모라이스가 이 연극 무대에 올릴 음악을 만들었던 사람은 바로.. 그의 새로운 작곡 파트너이자 젊은 피아니스트, 바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었다. 

'흑인 오르페' 연극은 굉장한 호평을 받았고 1959년 영화화되어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상을 휩쓸며 비니시우스와 조빔의 음악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삼바에 국한되지 않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의 브라질 음악이라는 장르가 세상에 소개된 것이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비니시우스 데 모라이스의 만남


(자. 이렇게 보사노바의 큰 기둥인 조빔과 모라이스가 만났다!)


조빔과 주앙 질베르토의 만남


1957년 바이아 출신의 젊은 가수 인 주앙 질베르토João Gilberto는 리오의 한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마치 대화하는 것과 같이 정제되고 속삭이는 보컬과, 판 데이로의 리드미컬 한 패턴을 모방한 독특한 기타 비트를 얹어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고 리오의 젊은 뮤지션들을 매료시켰다.

* 판데이로 : 삼바 그룹에서 연주되는 탬버린의 일종


사실 질베르토는 1952년, 'Garotos da Luna'(Moon Boys)의 멤버로 Rio에 입성했으나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떠났다고 한다. 2년 동안 도시에서 떨어져 살며 우울증과 싸우며 혼자 피나는 연습을 하다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Rio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마침내 다시 찾은 Rio에서 - 마치 자신의 앞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편안하게 노래하고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Odeon Records의 젊은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조빔이 있었다. ODEON 레코드 사의 예술감독이었던 조빔은 주앙 질베르토의 독창적인 기타주법에 매료되었고, 그의 새로운 곡 'Chega de Saudade'를 녹음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를 계기로 조빔과 질베르토는 수많은 앨범작업을 함께 한, 새로운 음악적 장르를 세상에 소개한 평생의 동지가 되었다.

주앙 질베르토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투샷. 오른쪽은 할아버지가 된 1999년도의 사진


(이렇게 조빔과 질베르토가 만나게 되었다!)


보사노바라는 새로운 음악적 무브먼트


당시 리우에는 나라 레앙Nara Leão, 카를로스 라이라Carlos Lyra, 로베르토 메네스칼Roberto Menescal 및 호날두 보스콜리Ronaldo Bôscoli 등 젊은 음악가 그룹이 있었다. 메네스칼과 라이라는 리우에서 꽤 잘 나가는 기타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곳은 곧 젊은 뮤지션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비공식적 어쿠스틱 잼 세션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에 피아니스트 Luís Carlos Vinhas와 Luiz Eça, Flautist Bebeto, 작사가 Chico Feitosa 등이 포함되어있었다. 로베르토 메네스칼이 회상하길, 주앙 질베르토가 등장한 이후, 그의 기타 아카데미를 찾는 모두가 보사노바 비트를 배우고 싶어했고 수많은 음악가들은 질베르토와 함께 연주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새로운 물결(New Wave)이라는 뜻의 “보사노바Bossa Nova”라는 명칭은,

Lyra, Menescal, Bôscoli, Leão 등 이 음악 모임에 참여했던 젊은 음악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훗날 거장으로 거듭난 주앙 질베르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비니시우스 데 모라이스의 만남을 새로운 음악적 운동/무브먼트로 해석한 것이다. 스스로 붙인 타이틀이 아니라, 동시대 뮤지션들에게 인정/부여받은 호칭이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비니시우스의 아름다운 가사 + 주앙 질베르토가 창조해낸 새로운 리듬/스타일 + 제작자로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안목(물론 조빔 자신이 훌륭한 가수이자 작곡가이기도 하다), 보사노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보사노바 : 조빔, 질베르토, 모라이스 세 사람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