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기타의 신'이라고도 불리우는 바덴 파웰(Baden Powell). 클래식 기타 연주를 통해 브라질의 전통 리듬과 서양 음악(클래식)의 화성의 조화로움을 연주해낸 기타리스트로 보사노바를 듣다보면 그의 연주와 그가 작곡한 곡을 반드시 듣게 된다.
파웰 연주의 특징은 라틴 기타 특유의 탄력과 애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 개방현을 때리면서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함이 타악기를 연상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는 '파웰 기법'이라는 개념도 존재한다고 한다.
또한 그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뭐니뭐니해도,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와 함께 만들었던 "아프로 삼바 Afro-Samba"일 것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대표곡 Berimbau를 소개한 바 있는데 - 보사노바가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1960년대 초, 브라질만의 문화에 대한 탐색과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아프로 삼바 곡들은 수많은 동시대 아티스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한편, 아프로 삼바의 탄생 이전에 발표된 파웰의 초창기 앨범에서는 그의 또다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브라질의 전통 기악형식인 쇼로(Choro)*에 뿌리를 두고, 50년대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러했듯 재즈의 영향을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형성한다.
*쇼로(Choro)라는 이름은 울다(Chorar)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눈물을 흐르게 한다고 해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1808년 포르투갈 왕정이 리우 데 자네이루로 수도를 옮기며 피아노, 클라리넷, 기타, 까바끼뇨(작은 기타) 등을 가지고와 궁중 연회에서 폴카, 왈츠, 마주르카 등의 음악을 브라질에 도입했는데 - 19세기 중반부터 노동자들이 권리가 신장되고 노예제도의 금지로 흑인들이 풀려나며 유럽식 궁중음악이 아프리카 음악 및 서민들의 음악과 섞이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쇼로가 되었다. 쇼로는 브라질의 토속 음악이 가진 리듬감에 서양 음악에서 중요하게 다루던 아름다운 운율/하모니를 융합한 것으로, 삶의 애환과 서글픔 등을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꼬마 신동 기타리스트가 브라질 재즈 신에 등장하기까지
바덴 파웰이라는 이름은 - 신발 장인이자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파웰의 아버지가 존경하는 보이스카우트 창시자 바덴 파웰 장군의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준 것이다. 어린 바덴 파웰이 아무도 기타를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5살 때 이모의 기타를 제멋대로 꺼내서 모라이스의 영상을 보고 따라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쇼로 기타리스트 제이미 플로렌스(Jayme Florence, 메이라 Meira라고도 널리 알려져있음)에게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멜로디와 함께 퍼커시브함을 살리는 파웰 주법의 뿌리가 쇼로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바덴 파웰이 10살 때 메이라가 그의 기타 연주를 몰래 녹음해서 브라질 공영방송에 보냈는데, 이를 계기로 바덴 파웰은 TV에 데뷔하게 되었다. 파웰은 10세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컸고 15세 때부터는 본격 프로로 활동하며 재즈와 락 무대에 올랐다. 그가 18살이었던 1955년에는 리우 데 자네이루 플라자 호텔의 무대에 올라 Claudette Soares과 잼 세션을 하는 등 브라질 재즈 신에 자신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작곡가로서의 입지도 갖추게 된 곡을 하나 발표하게 되는데, 바로 슬픔의 삼바Samba Triste(1959년 첫발표)다.
바덴 파웰이 작곡하고 빌리 블랑코Billy Blanco가 가사를 붙인 Samba Triste는 미국의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Charlie Byrd와 스탄 게츠Stan Getz에 의해 연주되었고, 재즈 삼바(Jazz Samba, 1962) 앨범에 수록되며 크게 사랑받았다.
비니시우스와 바덴 파웰의 의 만남은 Sexless Marriage
바덴 파웰의 음악 인생의 엄청난 변곡점이 되었던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만남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코파카바나 해변에 위치한 Boate 클럽에서 열린 Tom Jobim과 Ary Barroso의 쇼에서 처음 만난다. 그때 비니시우스는 이미 저명한 시인이자 외교관, 작사가였고 바덴 파웰은 재즈 신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기타리스트였다. 잘 알려져있듯 바덴과 비니시우스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거의 4년간 비니시우스의 집에 틀어박혀 위스키를 왕창 마시며 브라질 음악의 뿌리는 찾는 연구를 했는데 -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아프로 삼바였다. 이를 시작으로 두사람은 평생을 함께하는 음악적 동지가 되었다. 바덴 파웰의 아내였던 Silvia 는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Sexless Marriage 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프로 삼바의 발표 이전에도 두 사람은 로맨틱하고 서정적인 재즈+삼바 곡들을 많이 써냈는데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62년 어느 날, 바덴 파웰은 "full of love"라는 설명을 덧붙인 곡을 하나 가지고 모라이스에게 가사를 써달라고 찾아간다. 비니시우스의 시적인 가사를 붙여 남자와 여자가 함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새로운 선율을 들려줄 생각에 신이 나 밤 9시에 달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음악을 들은 비니시우스는 새벽 4시가 되도록 가사를 쓰지 못 하고 위스키만 3병을 비웠다. 바덴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묻자, 비니시우스는 이 음악에 동의할 수 없어(Disagreeble)이라고 했다.
비니시우스 - "내 생각에 이건 표절이야. 이대로 발표하면 바덴과 비니시우스가 표절했다고 온 신문에 날 거야"
바덴 - "참나. 표절이라뇨! 그래요, 표절이라고 치면 누굴 표절했다는 거에요?"
비니시우스 - "이건 완전 쇼팽의 곡이라구!"
바덴은 비니시우스에게 절대 쇼팽을 표절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비니시우스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고, 바덴은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비니시우스는 쇼팽을 아주아주 사랑하는 그의 (당시) 아내 루싱야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했다. 거의 날밤을 새고 해가 뜰 무렵의 꼭두새벽에, 그들은 만취한 상태로 루싱야를 깨워 바덴 파웰의 새로운 곡을 들려준다.
루싱야 - "아.. 정말 아름답고 로맨틱한 곡이군요. 쇼팽의 표절이 아니에요."
비니시우스 - "루싱야, 당신마저 나와 다른 생각을 얘기하는군. 그렇다면... 이건 쇼팽이 작곡하길 깜빡한 곡이겠지!"
루싱야에게 표절이 아님을 확인받은 비니시우스는 마음을 고쳐먹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고, 타자기 앞에서 단 번에 가사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Samba em prelúdio다.
나의 생각이긴 하지만 - 비니시우스가 바덴의 곡이 쇼팽의 표절임이 틀림없다고 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그의 음악이 쇼팽만큼이나 훌륭하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이 날밤을 새면서 쓴 이 곡은, 마리아 끄레우자Mariz Creuza와 토킨뇨Toquinho가 함께 불렀다. '당신이 없으면 내 삶이 의미 없다'고 말하는 애잔하지만 아름다운 곡이다. (가사를 보려면 아래 '더보기'를 클릭)
Samba Em preludio의 가사 (포르투갈어 가사를 영어로 번역한 것)
Without you, I have no purpose
Because without you, I don’t even know how to cry
I’m a flame without glow, a garden without moonlight
Moonlight without love, love without being given
Without you, I’m just lovelessness
A ship without sea, a field without flowers
Sadness that goes, sadness that comes
Without you my love, I’m no one
(woman’s part):
Ah, what saudade, what desire to see our life reborn
Come back, my dear
My arms need yours, your embraces need mine
I’m so alone, my eyes weary of staring into the distance
Come, behold life
Without you, my love, I’m no one
이번 포스팅에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 아무쪼록 두 사람의 만남으로 탄생한 아프로 삼바는 보사노바 제 2 물결을 이루었던 아티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MPB의 형성과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덴 파웰 Swings with Jimmy Pratt (1963)
한편, 비니시우스와의 본격적인 작업 전, 풋풋한 바덴 파웰을 만나볼 수 있는 앨범이 하나 있다. 추천하는 것은 1963년에 발표된 Baden Powell swings with Jimmy Pratt(1963, Elenco). 브라질, 유럽, 미국 등 세계 전역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앨범을 낸 바덴파웰의 "3번째 앨범"이니 그의 초창기 음악을 보여주는 앨범이라 할 수도 있겠다.
카테리나 발렌테Caterina Valente의 브라질 투어를 함께 했던 미국의 드러머 지미 프랫Jimmy Pratt이 리우에서 바덴 파웰을 만나 그의 연주에 매료되고, 앨범 제작을 권하면서 탄생한 앨범이다. 지미 프랫은 알로이시오 올리베이라를 꼬셔서 엘렌코에서의 제작을 제안하였고(바덴 파웰은 당시 2개의 앨범을 낸 상태였는데, 둘다 필립스에서 낸 앨범이었다), 본인이 앨범 디렉팅을 맡아 작업을 추진했다.
한참 재즈에 빠져 있던 젊은 바덴 파웰의 기타연주와, 지미 프랫 자신의 드럼 연주, 여기에 플룻(Jorginho da fluata, Copinha), 색소폰(Moacir Santos), 베이스(Sergio Barrozo), 퍼커션(Rubens Bassini)가 어우러져 정말 듣기 좋다. 특히 바덴 파웰이 쓰고 연주한 4번 트랙(Tema No.1), 9번 트랙(Tema No.2)은 이 앨범에서만 들어볼 수 있는 곡이다. 나는 Moacyr Santos의 곡을 연주한 2번 트랙(Cosa No.1)이 참 좋았다. 에스닉한 느낌의 인트로와 색소폰와 플룻이 대화를 주고 받는 형식의 연주가 마음을 좀 더 일렁이게 한달까.
그런데,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은 무엇보다도 마지막 트랙(10번)이라고 생각한다. 제랄도 반드레와 알라이드 코스타의 곡 끝없는 사랑노래 Canção do amor sem fim를 편곡하여 연주한 것. 기타는 특별한 기교 없이 주 선율을 연주하고 베이스와 드럼은 멜로디를 조심스럽게 감싸주는데, 다양한 악기의 소리가 감정의 고조를 따라 어우지는 부분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Manha de Carnaval 와 같은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트랙을 당연 좋아할 것이다.
그래도 쓸쓸하지만은 않았던 생의 마지막
바덴 파웰은1960년대 성공을 발판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했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꽤 큰 유명세를 얻고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전성기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지나친 소비로 파산하게 되었고, 이혼과 알코올 중독과 흡연 등으로 건강을 잃었으며, 무대에 서지 못하니 80년대에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잊혀진 아티스트가 된 것이다. 혹시나.. 고국의 어려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방황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1990년, 파웰은 브라질로 돌아간다. 마음와 몸의 건강을 잃은 뒤였지만, 고국에서 늦게나마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하파엘 하벨류Raphael Rabello나 야만두 코스타Yamandu Costa와 같은 젊은 기타리스트들이 바덴 파웰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가고 있었고, 다시 돌아온 그를 환대해준 것이다. 브라질로 돌아간 바덴 파웰은 그의 오랜 친구였던 술과 담배도 끊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공연과 녹음 활동을 통해 다시 한 번 활발히 음악 활동을 전개했다. 아쉽게도 제2의 전성기 또한 매우 길게가지는 못했는데 - 약해진 건강상태로 인해 바덴은 폐렴으로 2000년 세상을 떠났다. (하필 딱 2000년이라니. 20세기 브라질 음악의 유산이 되고자 했던 걸까)
1995년, 그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올랐던 바덴 파웰이 연주한 Manha de Carnaval을 들어보시라. 기타 한대 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는 소리. 말년의 그는 젊었을 때보다도 훨씬 강하고 빠른 연주를 구사하며 열정을 불태웠던 듯 하다.
그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는데, 피아니스트 Philippe Baden Powell de Aquino와 기타리스트 Louis Marcel Powell de Aquino다.
정말이지 음악(만)으로 꽉 찬 인생이다.
참고 : https://brunch.co.kr/@joaobrazil/271 (쇼로의 의미),
https://lyricalbrazil.com/2014/08/02/samba-em-preludio/ (samba-em-preludio 가사, 모라이스와 파웰의 일화)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legria33&logNo=120162575486 (바덴 파웰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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