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음악/1970년대 미국에서의 브라질 뮤지션

1970년대 북미권 음악 신에서 브라질 뮤지션들의 음악 활동 : 재즈와 록, 재즈와 펑크의 경계에서 스며들기

소심한 늑대개 2022. 1. 30. 23:11

[1960년대 브라질 음악사] 시리즈를 통해 보사노바의 등장과 부상, 그리고 MPB로 이어지는 브라질의 대중음악사의 굴곡을 살펴본 바 있다. 브라질 본토에서 보사노바의 운명은 - 정치/사회적인 요인 때문에 중단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 새드 엔딩이었지만, 북미권 음악 시장으로 브라질 뮤지션들을 진출시키는 계기가 되어 또다른 음악적 확장의 모멘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해피엔딩이었다. 브라질 뮤지션들은 미국에서 자신의 음반을 작업하기도 하고, 북미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며 자신들의 연주 혹은 작곡 스타일을 그들의 음악 세계에 심어놓기도 했다. 이들간의 융합은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의, 대체 불가능한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북미-브라질 뮤지션들간의 연결고리에 주목했던 그룹이 있었는데, 바로 Soul Jazz Records 이다. 얼마 전 번역한 책을 냈던 음반 제작사이자 음악 관련 출판사이기도 한 이 곳에서 1970년대 미국에 거주하며 작업한 브라질 음악가들의 음악만을 모아서 앨범을 낸 것이다. <BRAZIL USA 70> (2019, Soul Jazz Records) 를 들으며 이러한 연결고리가 어느 정도 실재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종종 좋아하는 소울, R&B, Funk, Jazz 아티스트들과 브라질 뮤지션들간 영감을 주고 받은 사실을 알아채며 짜릿해하곤 했는데, 그 연결된 작업들을 찾아서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미국에서 보사노바의 성공, 브라질의 군부 독재, 그리고 뮤지션들의 미국행

1960년대 보사노바의 등장은 미국에 브라질 문화를 알린 커다란 사건이었다. 잘 나가던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버드(Charlie Byrd)는 중남미 17개국 투어 중 접한 주앙 질베르토의 기타에 반해 미국에 이를 소개했고, 곧 보사노바는 미국 음악 시장에서 꽤나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찰리버드는 그 후 쭈욱 보사노바를 연주했고 그와 함께 Jazz Samba 앨범을 낸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 또한 보사노바의 아이콘이 되었다.

조빔의 음악을 찰리버드가 연주한, [Brazilian Byrd] (1966, Columbia)
Jazz Samba 앨범을 녹음하던 세션들의 모습 (1962년). 왼쪽부터 스탄게츠, 조버드(찰리버드의 형), 찰리버드 (사진 출처 : JazzTimes)

보사노바의 인기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주앙 질베르토 등 브라질 뮤지션들이 북미권에 진출하여 앨범을 발표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62년 카네기홀 무대의 성공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컸다. (관련글) 한편, 1960년대 후반 브라질의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고 점점 더 권위적이게 되는 군부 독재가 정부를 비판하는 예술가들을 탄압하자, 많은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 시기 미국 뮤지션들은 브라질 뮤지션들과의 작업을 굉장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1960년대 말 ~ 1970년대 : 소울, R&B, 흑인 음악이 인기를 얻고 Funk가 탄생하던 시절  

1960년 대 말~1970년대. 이 당시는 모든 게 혼란스러운 냉전시기였다. 어지럽고 절망스러운 사회의 모습에 반발하여 사랑과 평화, 자기 안의 가치에 집중하자는 히피문화가 탄생하여 무르익은 것도 이 시기이다.

그리고 미국 음악신은 이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재즈신은 하드밥을 거쳐 프리재즈*로 발전되며,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는 실험적인 연주들이 시도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멜로디를 연주하는 피아노나 기타가 아니라 리듬세션인 베이스나 드럼이 재즈 연주의 전면으로 나서는 방식이 등장했다. 한편 R&B와 모던재즈, 가스펠을 멋들어지게 결합시킨 소울 재즈**도 60년대에 가장 인기가 많았다.  소울 재즈 뮤지션들은 (당시 선행된 주류였던 하드밥에 비해) 간결한 멜로디 라인에 블루지한 연주, 펑키한 사운드를 얹어 풍부한 표현에 더 집중하는 특징을 보였다. 그리고 재즈 신 전반에 라틴 리듬이 차용되거나 아프리카 리듬악기 같은 이국적인 터치가 가미되고 있었다. 미국 서부에서는 50년대 후반 시작된 쿨 재즈가 무르익고 있었고, 쿨 재즈의 흐름을 타 보사노바가 주류 무대로 들어선 때였다.

* 프리재즈 뮤지션으로는 오넷 콜먼Ornette Coleman,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파로아 샌더스Pharoah Sanders 등이 대표적이다.
** 소울재즈 뮤지션으로 조 샘플Joe sample, 그랜드 그린Grant green, 로이 아예르Roy Ayer 등이 거론된다. (사실 소울재즈는 재즈와 R&B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로 소울 재즈 뮤지션을 명확히 정의내리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한편, 팝 신은 락의 전성기였다. 1960년대 비틀즈를 거쳐 롤링 스톤즈와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70년대 락의 성숙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 록, AC/DC의 하드록, 엘튼존의 팝 록이 등장하며 록 신이 세분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 모타운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흑인 음악/소울 음악 또한 1970년대에 굉장히 탄탄한 팬층을 가진 장르로 발전해 나갔다. Steve Wonder, Marvin Gaye, The Stylistics, Earth, Wind & Fire 등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흑인 뮤지션들 중 이 시기 활동한 사람들이 많다. 소울, 재즈, R&B 등이 결합된 흑인 음악의 총체인 펑크(Funk)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 60년대 후반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Funk가 신디사이저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적인 형태로 발전된 것이 Disco인데, 디스코는 1970년대 비지스와 ABBA를 필두로 인기를 얻었다.

그야말로 문화적 다양성이 꽃피우던 시절이었으며, 흑인 음악이 음악 시장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는 시기였다.


재즈와 록, 재즈와 펑크의 경계에서 스며들기

바로 이 시기, 브라질 음악과 뮤지션들은 미국에서 조금씩 인지도를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재즈와 록의 경계에서, 그리고 재즈와 펑크의 경계에서 말이다. 보사노바의 성공 덕분에 브라질 뮤지션들의 음반의 상업적 가치가 높아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1960년대 말 ~ 1970년대 미국의 음악신의 변화를 보면 - 리드미컬하고, 서정적이면서, 표현력이 매우 풍부한 (아프리카 흑인 음악의 뿌리가 있는) 브라질 음악을 받아들일 적기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래의 몇 가지 앨범을 들어보면, 경계에서 스며들었다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유우명 뮤지션들이 브라질 뮤지션들과의 협업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George Duke

키보디스트이자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한 조지듀크George Duke는 브라질 음악가들의 음반을 제작했고, 심지어 Brazilian Love Affair 라는 본인의 앨범까지 발매하며 브라질 음악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흔히들 Jazz Funk 앨범을 꼽을 때 빼놓지 않는 앨범들이다. 

  • 조지 듀크가 프로듀싱한 첫번째 앨범이 The Thrid Wave 의 Here and Now (1969, MPS)인데 필리핀계 미국인 5자매가 보사노바와 비틀즈의 노래 등을 부른 앨범이었다.
  • 조지 듀크가 프로듀싱한 두번째 앨범은 바로 라울 드 수자Raul de Souza의 SWEET LUCY(1977, Capitol) 였다. 세르지오 멘데스의 오리지널 보사 리우 그룹의 일원이었던 그를 조지 듀크가 미국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 조지 듀크는 급기야 Brazilian Love Affair 라는 제목으로 1980년 자신의 앨범을 발표했다. 여기에 Flora Purim, Milton Nascimento, Toninho Horta, Airto Moreira 등 브라질 뮤지션들도 대거 참여했다.

George Duke, Brazilian Love Affair (1980, Epic Records)
조지 듀크의 앨범에 참여했던 뮤지션들. 왼쪽부터 George duke, Leon 'Ndugu' Chancler, Alphonso Johnson, Flora Purim, David Amaro, Hermeto Pascoal, Airto Moreira (1976)

Airto Moreira

라틴 리드머(퍼커셔니스트)로서 미국 재즈에 큰 영향을 미친 에알토 모레이라Airto Moreira가 유명해진 것도 이 때였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칙 코리아 등 미국 재즈와 락의 경계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를 발전시켰고, 퍼커셔니스트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 Miles Davis는 1970년 Bitches Brew 앨범을 내며 재즈 락의 시작을 알렸는데, 이 음반에 브라질 출신의 퍼커션 연주자 에알토 모레이라Airto Morerira가 리듬세션으로 참여하게 된다. 1969년~1970년 2년간 마일스의 일렉트릭 밴드의 일원으로 투어를 하며 이름을 날린 에알토는 이듬해 발매한 앨범 Live Evil(1971)에도 참여하여 멋진 연주를 보여준다.
  • 에알토 모레이라는 조 자비눌과 웨인쇼터로 유명한 웨더 리포트의 창단 멤버였으며,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1972) 에서도 밴드 세션으로 참여하여 인상깊은 연주를 보여준다.
  • 마침내 에알토가 자신의 이름으로 낸 Seeds On the Ground - The Natural Sounds of Airto (1971)에서는 아프리카와 브라질의 소리 담은 감각적인 음악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아내였던 Flora Purim, Dom Um Romod, Hermeto Pascoal 과 같은 브라질 뮤지션들이 참여했으며 베이스는 론 카터 Ron Carter가 참여했다.

Airto Moreira, Seed on the Ground : The Natural Sound of Airto (1970, Buddah Records)

Quincy Jones

마이클 잭슨과 레이 찰스 음반의의 제작자로 널리 알려진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첫번째 히트앨범 또한 보사노바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재즈, 힙합을 넘나들며 수많은 명반을 제작한 퀸시 존스였지만, 그를 처음으로 빌보드 200위 권으로 등극시킨 앨범은 다름 아닌 Big Band Bossa Nova (1962, Mercury) 였다. 그의 본격적인 전성기라 할 수 있을 1980년대에는 (아마도 마이클 잭슨 때문에 바빠서) 브라질 뮤지션들과의 협업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2010년 1962년 앨범에 대한 트리뷰트 앨범을 내기도 했으니 퀸시 존스에게 있어 무척 각별한 앨범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Big Band Bossa Nova(1962, Mercury) 앨범을 통해 조빔과 같은 브라질 뮤지션들의 곡들을 자신의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해서 연주했으며, Soul Bossa Nova 라는 아주아주 유명한 곡을 선보였다. 도입부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곡이다.
  • Quincy Plays for Pussycats(1965, Mercury)에는 루이즈 본파Luiz Bonfa의 곡인 Non-stop to brazil 을 실었고,
  • Back on the Block (1989)에는 이반 린스Ivan Lins가 쓴 Setembro(Brazilian Wedding song)을 싣기도 했다.
  • 최근에는 그의 1962년 앨범에 대한 트리뷰트 앨범으로 Q : Soul Bossa Nostra (2010, Universal Music)을 발표했다.

Quincy Jones, Big band Bossa Nova (1962, Mercury)

뭐 이 뿐이겠는가. 레온웨어와 마르코스 발레의 인연에 대해서는 예전 포스팅에서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주앙 질베르토와 스탄게츠의 앨범 Getz/Gilberto 를 제작했던 Creed Taylor 가 1968년 CTI 레이블을 세우면서 브라질 뮤지션들을 적극 발굴하여 앨범 제작을 주도하기도 했다. Mas Que Nada 로 유명한 세르지오 멘데스, 주앙 도나투, Tamba 4, 마르코스 발레, 밀튼 나시멘토 등 많은 브라질 뮤지션들이 끝내주는 앨범들을 이 시기 미국에서 발표했다.


한동안 이 1970년대 브라질 뮤지션들이 미국에서 진행한 작업에 대한 포스팅을 올려보려 한다. 흑인 음악을 즐겨듣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음악적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보사노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반가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Tropicália로 대표되는 뮤지션들은 브라질에 남아서 MPB를 이어갔는데, 군부의 탄압과 검열을 뚫고 사회를 비판하는 음악들이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해나갔다. 특히 펑크 락, 글램 락 뿐만 아니라 헤비메탈과 사이키델릭 록 신이 매우 발전하는 양상을 띄었다. 정치적 저항에 대한 상징이었던, 어쩌면 브라질만의 반문화(히피)라고도 볼 수 있을 이 시절 MPB에 대해서는 또다른 시리즈를 기획하여 깊이있게 살펴볼 것이다.

자. 일단 조지 듀크의 Brazilian Love Affair 를 들어보시길 !

George Duke, Brazilian Love Aff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