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다이브 레코드(Dive Records) : 그 곳에서 만난 것들
본격 겨울이 오기 전 11월 말, 을지로의 다이브 레코드에 다녀왔다. 딱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도 다이브 레코드는 단번에 내가 가장 애정하는 레코드점이 되었다.
LP파는 곳이야 물론 여러군데 있지만 다이브 레코드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면.. 이곳은 주인장이 음악에 대하 애정을 듬뿍 담아 큐레이팅하여 소개하는 곳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앨범이 진열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 앨범마다 이건 어떤 음악인지 소개할 얘깃거리가 있는 담겨져있음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달까. 사장님은 앨범에 대해 물어봐주기를 은근 기대하고 계신 것 같았다. 착각인가?
특히나 반가웠던 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Brazilian 코너였다. Stan Getz 나 Sergio Mendes 같은 대중적인 앨범들이 아닌Jorge Ben 이나 Milton Nascimento 같은 뮤지션들, 그리고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몰랐던 브라질 뮤지션들의 앨범이 놓여 있어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한국에서도 이런 큐레이션을 만날 수 있다니. 내가 좋아할 만한 보석같은 음악을 많이 알고 있을 누군가에게 새로운 음악을 소개받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열띤 얼굴로 앨범들을 뒤적거리고 있자니, 사장님이 턴테이블을 만지작거리며 내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는 브라질리언 펑크와 소울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슬금슬금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사장님은 3~4장의 앨범을 들려주셨더랬다. 인센스도 하나 피워주셨지. 거의 한시간이 넘도록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속으로 아 너무 좋아!라고 외치면서.
이곳엔 LP들과 함께 읽어볼 만한 책과 잡지도 만나볼 수 있었다. 활자 중독에 걸린 호기심 많은 나는 구석구석 다 들춰가며 구경했다. 턴테이블과 스피커, 직접 만든 것인지 궁금해지는 LP 기계같은 것도 놓여있었고... 맞다, 멀리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건너온 Sight Glass의 원두를 사용한 아메리카노도 한 잔 마셨다. 세상에 커피까지.. 정말이지 세심하게 신경쓴 주인장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멋진 시간을 선물해준 주인장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고마움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 LP 한 장과 잡지 한 권을 구매하게 되었다. 턴테이블도 없는 주제(?)에 왠지 추천해준 앨범을 하나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음악은 유투브로 들어야하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나중에 턴테이블을 사서 들으면 되는걸. (실은 이런 마음으로 구매한 LP가 이미 몇장 있다.)
이 날 구매한 것은 Sandra Sa의 Vale Tudo(1983) 앨범. Som Livre에서 발매했던 것을 영국의 레코드사 Mr. Bongo에서 리이슈한 것이다. Sandra의 목소리야 알고 있었다만, 리이슈한 레이블이 믿음직스러웠고 무엇보다 앨범에 Tim Maia와 Lincoln Olivetti의 이름이 보이길래 분명 내 마음에 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매장에서 들어보고 맘에 들어서 사긴 했지만 마치 안 들어보고 산 것처럼 말하는 건 말이다, 나는 음악을 첫 인상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들을 때 더 좋은 음악만을 '내 취향'이라고 인정한다. (푸핫)
그리고 역시나.. Vale Tudo는 브라질리언 펑크-부기우기를 듣고 싶을 때 자주 꺼내듣게 될 것이 분명한 앨범이다. Lincoln Olivetti 의 펑키한 사운드(Lincoln은 키보드의 마법사라고도 불렸던 Som Livre의 유명한 제작자. 80년대 MPB의 명반을 다수 제작했다)가 Sandra의 소울풀하면서도 앳되고 나른한 목소리랑 잘 어울렸다. 그리고 Tim maia, Jamil Joanes (Banda Black Rio), Cassiano 등의 뮤지션들이 참여한 의미도 있으니 1980년대 브라질리언 펑크의 집합체라 말해도 무방하다는 생각. 특별히 좋았던 것은 앨범을 여는 Trem Da Central과 Candura 두 곡이다. 가만 있으려고 해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사운드.
속커버는 쨍한 빨간색.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사진이 담겨있는데, 이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이날 처음 알게 된 Wax Poetics 라는 잡지. 음악에 대한 읽을 거리를 엮은 계간지로 2001년에 미국에서 창간된 잡지였다. 많은 종이 출판물들이 그러했던 2017년 폐간의 길을 걸었다가.. 2021년 구독형 저널리즘으로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제야 이 잡지를 만날 수 있었던 나는 Wax Poetics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이건 정말이지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잡지였다. 단순 홍보성 글이나 별점 매기기 식 평점을 담은 것이 아니라 앨범과 아티스트에 대해 "Dig dip"한 사람들이 마침내 써내는 그런 글. 내가 소장하고 싶고, 쓰고 싶고, 일부가 되고 싶은, 그런 음악 저널리즘이었다.
We explore the music trailblazers, cultures and stories that shape the sounds of yesterday, today, and beyond. ...
From hip-op, to funk, techno, tropicalia, jazz, and beyond; we set out to shine a light on the heaviest stories in music. Connecting both the old and the new, we fill in the gaps. That’s not to say you won’t also discover stories on the likes of Stevie Wonder or Nina Simone here (you will!), but you’ll also find so much more. - Wax Poetics
그러니 나는 냉큼 한권을 고르게 되었고 - 그 한 권을 하필 2021년 3월호로 하게 된 것은 세르지오 멘데스에 대한 글이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질 음악에 특화된 음악 저널리스트이자 DJ Allen Thayer의 글. 여기에 실린 세르지오 멘데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을 통해서 다뤄볼 생각이다.
아무쪼록 다이브 레코드에서의 시간은 -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고 온 것들은 내마음을 무척이나 충만하게 해주었다. 여운이 남는 레코드점을 만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