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JIFF 전주 국제영화제 다녀온 풍경
화창한 어린이날을 맞아 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늘 이맘 때쯤엔 '맞다. 지금 전주영화제 하는 때인데 한 번 가볼까?'하는 생각을 하는데, 오랜만에 실천에 옮겨본 것인다. 거의 10년 만의 재방문이다. 어린이날에 왜 어른인 내가 신나게 노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말이다 - 본디 어린이는 '얼-인(人)이'에서 왔으니, 얼이 있는 자 누구든 즐길 자격이 있는거 아니냐고 반문 하고 싶다. 물론 쓸데없는 자문자답이다.
감사하게도 마음이 통하는 얼인이 3명과 함께 이 여정에 다녀왔다. 여운이 많이 남았고 꽤나 마음에 드는 장소들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의 풍경을 남겨본다.
1. JIFF 기간, 객사길 인근 풍경
전주 영화제는 객사길에 위치한 CGV와 씨네Q에서 대부분의 영화가 상영된다. 좁은 구역에 영화제가 집중되어있기에 상영관을 옮겨가거나 주변을 둘러볼 때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차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가능한 축제이다. 그리고 이렇게나 날씨 좋은 4월말-5월초에 열린다. 우리가 갔던 날은 매우 화창했는데, 아직은 이른듯한 초여름이 느껴지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한 것이 걷기에 참 기분 좋았다.
2. 먹을 거리 풍경 : 동영커피, 전일갑오, 왱이집
이번에 전주를 걸으며 느낀 것 중 인상깊은 것은 골목길이 참 정갈하게 정돈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골목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가꾸어진 정원같다는 점이었다. 사진을 많이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서울로 치자면 서촌과 같은 동네 주민들의 손길이 골목골목 묻어 있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카페이 즐비하지도 않고 모두 동네 상인들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골목길이었다.
먼저 빼놓을 수 없는 커피에 관한 얘기. 전주에 가면 방문하려든 카페를 몇 군데 체크해두었는데, 영화제가 목적이었던지라 (그리고 함께 움직인 동행이 있었기에) 객사길 인근에서만 한 곳만을 다녀왔다. 그 근방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로스터리 카페라는 동영커피.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라고 한다. 남편은 커피를, 아내는 디저트를 맡는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게이샤 품종의 원두를 골라 따뜻한 드립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 그냥 적당한 밸런스의 큰 임팩트는 없는 커피였다. 나는 역시 OO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는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치즈 케이크! 그것은 정말 너무나 맛있는 치즈 케이크 였다. 특히 케이크 가운데 부분은 약간 흐물한 상태로 서빙되었는데 (아마도 의도된 것인 듯)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달콤하게 사르르 녹는 것이 압권이었다. 어쩌면 커피보다는 디저트에 초점을 둔 카페가 아닐까. 이 정도 디저트라면, 아까 마신 저 정도 수준의 - 특별한 개성없는- 커피를 함께 마시는 것이 궁합이 잘 맞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밤에 수다떨면서 먹은 먹태. 요즘은 가맥이라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가게에서 맥주를 사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마시는 것인데, 예전에 이태원 근처에서 유행하던 것이 레트로 열풍을 타고 다시 돌아왔나보다. 여하튼 이런 열풍 속에서 줄 서서 먹는 노포로 전일갑오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서 연탄불에 구운 먹태를 사다가 방안에서 맥주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날 본 영화에 대해. 바삭하게 구워진 먹태와 소스의 조합이 꽤 괜찮았다.
이날 수다쟁이 4인방은 새벽 4시까지 수다를 떠는 기염을 토했다. 말을 많이 하면 허기가 진 법, 자려고 누우니 꼬르륵 소리가 몇번이고 났다. 나는 진짜로 배가 고파서 눈 뜨면 콩나물 국밥 먹으러 가야지,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고 - 아침엔 일행들을 부추겨 왱이집의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삼삼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참 맛깔났다. 밥알 한톨 남기지 않고 맛있게 다 먹었다.
3. 동네 책방 풍경 : 서점 카프카
마지막 방문지였던 서점 카프카. 새로운 도시에 가면 늘 동네 서점을 방문해보는 나만의 습관에 따라 이번에도 동네 서점 한 곳을 방문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찾아보면서 느낀 것인데 전주는 동네 서점 생태계가 제법 안정적으로 구축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심 곳곳에 꽤 많은 동네 서점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동네서점 문학작가상'과 같은 처음 들어보는 재치있는 공모전*도 열리고 있었다.
* 물론 이런 이벤트가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볼 순 없겠지만, 책을 통해 소통하고 싶어하는 책방 주인들이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과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의 의견 나눔의 장을 스스로 만드는 데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약간은 놀라웠다. 특히, 이 공모전의 기획과 주최는 동네 서점 연합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말이다.
서점 카프카의 풍경은 영화 속에 있는 서점인 것 마냥 아름다웠다. 초등학교 마룻바닥과 같은 서점의 바닥이 생각난다. 밟을 때마다 끼익끼익 소리가 나서 더욱 격렬하게 구석구석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다. 주인장이 선정하여 골라놓은 책들 중 흥미로워 보이는 것들도 많았는데, 특히 나는 이창동 감독에 대한 다큐를 인상깊게 읽은 후였던지라 버닝과 시의 각본집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 서점에 가면 주인장이 힘들게 골라둔 책들 중 한 권 정도는 사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이번엔 구경은 잠깐만 하고 커피를 마셨으니 책은 사지 않았다. (그래도 살 걸 그랬나? 나는 이상하게 책을 구입할 때 지나치게 신중해서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사지 않았다기 보다는 사지 못했다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한 것 같다.)
전주 곳곳에 위치한 선물같은 공간들이 이번 1박2일간의 여정을 기분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주었다. 다른 계절에 또 전주를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