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미르 데오다토Eumir Deodato가 그린 보사노바
잘 알려진 것처럼 에우미르 데오다토(Eumir Deodato)는 건반 연주자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이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하며 브라질-미국-유럽 등 활동 무대와 역할, 음악 스타일을 바꿔왔기에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모습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1972년 자신의 솔로 데뷔작 <The Prelude(CTI)>를 통해 선보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ustra)'의 재즈-펑크 Jazz-Funk, 그리고 쿨앤더갱과 Bjork 프로듀서로서의 모습일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의 데오다토를 있게 한 것은 편곡자로서의 출중함에 있다. 특이하게도 데오다토의 프로 경력은 연주자가 아니라 편곡자로서 시작되었는데 그 시절에 관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17살에 이미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적이 있는 데오다토는 피아니스트로서 클럽에서 연주하기도 했는데 - 1959년 로베르토 메네스칼Roberto Menescal과 듀르발 페레이아Durval Ferreira의 그룹에 피아니스트이자 편곡자로 합류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편곡 능력은 빠르게 소문을 탔고, 곧 ODEON의 제의를 받아 편곡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 때 함께 작업했던 뮤지션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나라 레앙, 레니 데일, 실비아 텔레스, 마르코스 발레 등.
그렇게 편곡자로서 이름을 날린 데오다토였지만, 그리고 많은 뮤지션들이 칭송해마지 않는 편곡자였지만, 역시 조력자의 역할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듯 하다. 자기의 이름을 내건 앨범을 내고 싶었던 것이다. 데오다토의 2005년 레드불 뮤직아카데미강연을 들어보면 과거의 일화를 언급하는 그에게서 창작자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1960년대 초, 당시 음반사에서 나의 앨범을 프로듀싱한다고 하니까 뮤지션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니, 편곡자의 앨범을 낸다고? 그 사람은 뮤지션이 아니라 엔지니어인데? 이런 식의 반응을 보였다 (입술 삐죽)"
에우미르 데오다토의 보사노바 1 : Inútil Paisagem (1962)
하지만 프로듀서 로베르토 꽈르틴Roberto Quartin은 데오다토의 앨범 제작을 감행했는데, 그의 안목은 매우 탁월했다고 해야겠다. 1964년, 마침내 데오다토의 이름을 걸고 나온 첫번째 앨범은 조빔의 곡을 데오다토만의 스타일로 편곡한 버전으로 이루어진 < Inútil Paisagem - As Maiores Composições de Antonio Carlos Jobim (Forma)>이다. Insensatez, Corcovado, Garota de Ipanema, Inutil Paisagem 등 조빔의 유명한 곡들이 데오다토의 손을 거쳐 새롭게 연주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앨범이라서, 전곡을 다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Eumir Deodato - Inútil Paisagem (1964 - c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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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다토의 섬세하고도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은 기타와 피아노, 나긋한 목소리로 연주되던 조빔과 질베르토의 음악과는 다른 층위를 풍경을 그려낸다. 바다에 쏟아지는 부서지는 햇살같은 데오다토의 건반소리에 더불어, 플룻/트롬본/색소폰 등 금관악기는 잠들지 않는 도시의 소리를 내고, 중간중간 들려오는 현악기의 소리는 바람이나 구름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섬세하게 조율된 소리들이 그리는 풍경에는 아련함이 넘쳐흐른다. 나는 이 앨범을 정말로 좋아한다.
이 앨범 슬릿에는 당시 파트너로 활동했던 조빔의 라이너 노트가 적혀있다. 조빔은 이런 찬사를 보냈다.
(데오다토처럼) 21세 소년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음악적 재능이 있다거나 능숙하다거나 현명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21살의 에우미르는 실수의 경험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악보는 아름답게 쓰여져 있고, 각각의 악기가 최적의 위치에 있고, 균형이 잘 잡혀 있고, 리듬, 하모니, 프레이즈에 우아함과 혁신이 깃들어 있다. 그의 편곡은 진지하지만 맛있고, 클래식하지만 혁신적이다.
에우미르 데오다토는 모든 편곡가가 갖추어야 할 완벽한 브릿지 엔지니어일 뿐만 아니라 모든 편곡가가 갖추어야 할 크리에이터이자 시인이다.
그런데 에우미르의의 피아노는? 너무나 흠잡을데 없다! 세상에, 하느님은 데오다토에게 이 모든걸 다 주시다니!
- Antonio Carlos Jobim
에우미르 데오다토의 보사노바 2 : Aquele som dos gatos (1966)
이어서 데오다토는 기타리스트 듀르발 페레이라Durval Ferreira, 베이시스트 세르지로 바로소Sergio Barroso, 드러머 윌슨 네베스Wilson das Neves와 함께 os gatos 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두 장의 앨범을 내는데 이게 또 기가막히게 좋다 : 1965년 os gatos 와 1966년 Aquele som dos gatos. 1966년 이후는 브라질은 보사노바가 지속되기 어려운 분위기였고, 뮤지션들은 흩어져서 작업을 하게 되며 os gatos의 활동은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이들이 남긴 것은 단 두 장의 앨범에 그쳤지만 보사노바 앨범의 명반으로 꼽힌다. 워낙에 좋은 곡들과 명연주자들을 모아두기도 하지만, 그 주역에는 데오다토의 편곡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스 갸또스Os gatos로 말하자면, 엄밀히 말하면 기타리스트 듀르발 페레이라의 부름에 데오다토가 응하면서 결성된 그룹이었다. 그리고 '고양이들'이라는 뜻의 그룹명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잘 생긴 남자를 고양이(cat)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페레이라와 데오다토 두 사람이 잘 생기기도 했고 - 듀르발의 초록색 눈이 고양이를 닮기도 해서 os gatos 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2007년 일본에서 발매된 앨범에 남긴 와카바야시 가키의 해설에서 참고한 것)
이 앨범의 편곡은 역시 에우미르가 맡았는데, 전체가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은 아니다. 그치만 곡에 딱 알맞는 -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것 같은 - 악기 편성으로 편곡된 12곡을 싣고 있다. 두 곡에 대해서만 얘기해보자.
앨범을 여는 1번 트랙 Bonita(조빔 작곡)에서는, 이런 레이어가 듣는 이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한다. 바이올린과 플룻이 주고 받는 애달픈 멜로디와 뒤편에서 들려오는 베이스, 가볍게 튕기는 피아노 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함. 떠나지 말고 나를 사랑해달라는 원곡의 가사를 직접 부르지는 않음에도, 실연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과 사랑하는 이를 생각할 때에 오는 기쁨이 교차하는 감정의 긴장감같은 것을 자아내는 것이다.
8번 트랙 Adeus Às Ilusõess는 The shadow of your smile(지니 만델 작곡)이라는 유명한 스탠다드 재즈곡을 보사노바 버전으로 편곡한 것이다. 도입부의 색소폰(혹은 트럼본?)의 읊조림에 플룻이 화답하고 피아노가 이어가는 식으로 이루어진 구성인데,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튀어나오는 데오다토의 스캣이 이 노래를 완전히 다른 노래로 바꾸어 놓는다. 피아노와 하나된 흥얼거림으로 곡의 중반부를 이어가면서 노래 전체를 한 남자의 회상으로 물들이는 느낌이 든다. 한 번 들어보시길.
그리고, 감사하게도 앨범 전곡도 유투브에서 들을 수 있다.
Aquele Som Dos Ga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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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두 장의 앨범은 보사노바가 활짝 핀 시절 데오다토의 감성을 보여주는 작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무엇보다 클래식을 좋아하거나 오케스트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데오다토의 편곡으로 다시 태어난 보사노바에서 무한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봄이 왔기에, 이 앨범을 꺼내어 들어볼 때가 된 것 같다.